외상이 치료된 후에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만성통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손상된 지 3~6개월 후에 나타나며 외상이 치료되고 통증 유발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계속된다. 만성통증은 엄연한 질환임에도
이를 치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96년 미국통증학회와 미국통증의학연합회는 합동선언을 통해 “만성통증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신경계 질환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인체 신경계는 말초신경, 척수신경, 뇌신경으로 구성돼 있는데 작은 자극, 혹은 자극 없이도 통증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통증이 만성통증이다. 조직 손상 3~6개월 후에 나타나며 외상이 치료된 후와 통증 유발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계속된다. 만성통증을 적절히 치료하기 힘든 이유는 신경계통의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의 변이 혹은 손상으로 발생하는 엄연한 질환임에도 이를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치료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용철 교수는 “만성통증의 종류는 대상포진 후 통증, 신경병성통증,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감염에 의한 통증이 만성통증으로 이어진 경우, 그리고 원인을 찾지 못한 통증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며 “허리 디스크 수술을 통해 통증 유발 원인을 완전히 제거했는데도 통증이 계속되고 더욱 심해진 경우가 만성통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성통증 환자는 통증으로 인해 정신적·사회적 장애를 갖게 되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심한 통증이 지속되는 환자의 50%는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의 경우, 사망 원인 중 여덟 번째가 자살인데, 만성통증 환자의 자살이 전체 자살의 33%를 차지한다. 이처럼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특히 나이가 많은 환자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만성통증으로 인한 자살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만성통증 환자는 암, 관절염, 희귀 질환 환자를 포함해 전체 성인 인구의 약 10%인 2백5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의료계는 추정하고 있다. 특히 고령 인구 및 만성 질환의 빠른 증가세로 인해 만성통증 환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199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5개 대륙에 걸쳐 2만6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가 지속적인 통증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약물 투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환자들은 통증이 있어도 진통제를 쓰지 않고 일단 참는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질 때까지 참거나 통증이 있을 때만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남성모병원 만성통증의학과 문동언 교수는 “만성통증은 시간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통증은 심할 때보다 약할 때 조절하기가 훨씬 쉬우므로 조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어떤 약으로 통증을 조절해야 하는가이다. 흔히 심한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하고 장기간 치료하다 보면 중독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인식이다. 선진국들은 최근 10년 사이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인식 개선이 많이 이루어져 우리나라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을 사용하고 있다. 정신적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 마약과 마약성 진통제는 분명히 다르며, 그 양과 종류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다양한 임상 실험을 통해 필요한 최소 용량을 사용하며,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적다. 또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마약 성분은 원래 인간이 합성하기 이전에 인체에서 이미 만들어지는 성분이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전상룡 교수도 “마약성 진통제는 진통 효과가 뛰어날 뿐 아니라 제대로만 사용하면 매우 뛰어난 의학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약물”라고 말한다.

글 / 장형순(헬스 경향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