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은 인간 누구나 공평하게 경험하는 유일한 기적이다. 어머니의 살을 찢고 따뜻한 체온으로 세상에 나온 우리는 이미 그순간에 가장 큰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살면서 또 다른 기적과 행운에 목말라 한다. 어쩌면 아무도 자신의 첫 호흡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작가 남경숙씨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기적을 사진으로 되살렸다.

탄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기적
온몸은 피와 태반으로 얼룩지고 쭈글쭈글 주름 잡힌 손은 잡을 곳을 찾는지 허공을 휘젓는다. 잔뜩 찡그린 채 누군가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어찌 보면 심술궂기까지 한데…. 갓 태어난 아이는 우리가 여태껏 보아온 하얗고 천사 같은 모습이 아니다. 산모의 피와 땀과 눈물이 토해지는 탄생의 순간은 그리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왔다. 출산의 현장이 전쟁터라면 사진작가 남경숙씨(49)는 7년 동안 전장에서 탄생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는 원래 사람은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했어요. 살면서 착하게 꾸며질 뿐이지 원래 악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게 생명이지.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운 기적이 어디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원래 선하게 태어났는데 눈치보고 걱정하고 살면서 악하게 변했구나. 이런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나 같은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남씨의 생업은 간호사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김해에 있는 23평짜리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치과 병원 마취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산 경험이 없는 ‘오리지널 싱글’이지만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마음으로 아이를 낳았다. 맨 처음 아이 사진을 찍었을 때가 1998년, 부산에서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그냥 아이들이 예뻐서, 아이들 자는 모습이나 웃는 모습같이 누가 봐도 예쁜 아이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게 5년 정도 사진을 찍었는데 더 이상 예쁘기만 한 사진은 찍지 못하겠더라고요. 사람들도 예쁜 아이 사진을 보면 ‘어머, 예뻐요’라고 탄성을 지르고는 그걸로 끝이에요. 그 이상의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다는 걸 느끼고 한동안 카메라를 놓았죠.”

그렇게 1, 2년쯤 쉬다가 사회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이슈화되던 2005년 초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낙태하지 마라’ ‘저출산 문제 심각하다’ 다그치는 것보다 ‘이게 생명이다’라고 보여주는 것이 더 강한 울림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전시나 책에 대한 구상도 그때부터 그려졌다.

“아무도 자신의 삶의 시작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도 나도 이렇게 태어났고 이토록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생명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기적이 바로 탄생이잖아요. 시작은 다 귀해요. 시작만큼 삶도 귀하다는 걸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명을 그쪽으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정말 직접, 리얼한 출산의 현장에 뛰어들게 됐죠.”

‘36도 5부’는 우리 마음의 온도
지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카메라를 들고 분만실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산 장면은 부끄럽고 추하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 어렵게 산모를 섭외해서 촬영 승낙을 받아도 “아이 얼굴이 신문에 나면 명이 짧아진다”며 시어머니가 반대했다. 생판 모르는 산모의 출산 장면을 찍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친구나 친구의 언니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면 어렵게 설득해 사진을 찍었다.

“산부인과마다 방을 써서 붙여놨어요.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사진을 찍으려 하고 전시와 책을 낼 생각이라고. 제 생각에 동참하신다면 협조 부탁드린다고요. 병원을 산부인과에서 치과로 옮기면서 퇴근 후, 주말, 휴가까지 받아서 산부인과에서 살았죠.”

그러던 것이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달라졌다. 미디어를 통해 연예인들의 출산 장면이 방송에 나오고 캠페인이 벌어지며 촬영 제의에 흔쾌히 승낙하는 산모도 늘었다. 산모 가족들의 의식도 전보다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미디어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정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더라고요. 요즘은 ‘인권 분만’이라고 해서 아이가 최대한 안정되고 평화로운 상태로 태어날 수 있게 하잖아요. 예전처럼 엉덩이를 때려 울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려해서 조명도 어둡게 하고요. 전보다 산모 섭외는 쉬워졌지만 사진 찍는 데는 더 힘들어진 면도 있죠.”

분만실에서 촬영을 하는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신생아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 둘째는 고군분투하는 산모에게 영향을 주지 말 것, 셋째는 의료진들을 방해하지 말 것. 다행히 병원의 협조가 큰 도움이 됐다. 얼마 전까지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던 그도 분만 환경의 변화에 맞춰 디지털 카메라로 장비를 바꿨다.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면 출산의 긴박한 상황을 포착하기가 어려웠다. 임신 후 약 아홉 달이 지나 산통이 시작되고 자궁경부가 10cm 열리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가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는 순간, 필름 카메라로는 세 컷을 찍기도 버거웠다.

“찍으러 가기 전에 콘티를 수십 장 그려 갔어요. 예행연습이나 연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발생하는 상황을 그대로 놓고 제가 순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콘티로 그려서 미리 간호사에게 보여주고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들어가도 한 장 건지기가 힘들었어요. 아이가 나오는 순간은 정말 순식간이거든요.”

‘36도 5부’ 중 한 컷. 남경숙 작가는 아이 등에 주름을 보며 노인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보다 더 나은 무엇이 없을까 고민하는 우리네 인생이 연상된다.
한 번에 여러 장을 찍겠다는 욕심은 일찌감치 버렸다. ‘딱 한 장만 찍고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다 불쑥, 튀어나온 시커먼 아이 뒤통수만 보고 병원을 나선 적도 많다.

“한동안은 무척 힘들었어요. 자다가도 출산이 임박한 산모가 있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뛰어나가고, 출근하다가도 연락이 오면 가고. 어렵게 시간 맞춰 갔는데 한 장도 못 건질 때가 부지기수였으니까요.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뭐 하러 찍노. 밥을 주노 떡을 주노’ 하면서도 ‘그래도 세상에서 이 사진은 내가 제일 잘 찍는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죠. 이제는 원도, 한도 없어요.”

그렇게 7년 동안 찍은 탄생의 순간들에 그가 붙인 이름은 ‘36도 5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 체온. 의학적으로는 인간 몸 안의 효소와 호르몬이 가장 잘 활동할 수 있는 온도다.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우리 마음의 온도이자 희망의 온도로, ‘`사람이 태어난 이상 그 정도의 마음의 온도는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었다. 모든 이들은 36도 5부로 와서 36도 5부를 잃으며 돌아간다. 그는 시작을 보았으면 끝도 본 것이라 말한다.

모든 시작은 귀했습니다. 모든 끝도 귀할 것입니다
‘36도 5부 전(展)’은 경남 김해와 서울, 두 곳에서 열렸다. 전시에 맞춰 같은 이름의 사진집도 출간됐다.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지난 4월 15일부터 20일까지 엿새 동안, 서울 인사동 아트비트 갤러리에서 23일부터 28일까지 역시 엿새 동안 열린 이번 전시를 아이와 부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찾았다.

“어느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전시를 보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더라고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 이제 알았어요’라구요. 누군가는 ‘39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 왔는지 봤습니다’라고 적어놓았고요. 준비하는 동안 많이 힘들고 지쳤었는데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하길 잘했다고 느꼈죠.”

자비로 전시회 두 번, 한 권의 책을 준비하며 경제적인 부담도 컸다. ‘내가 미쳤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전시회에서 아이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머니들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사진이 아니면 저 사람들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하길 잘했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사진의 주인공들도 전시장에서 재회했다.

“제일 처음 찍은 사진이 지난 1998년쯤이었으니까 그 갓난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됐더군요. 이제 막 태어나 배냇짓을 하던 사진 속 아이가 동생을 업고 전시장에 왔어요. ‘누군지 알아?’ 물으니까 ‘아가’라고만 하대요(웃음).”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달기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경상도 아버지는 “그때 우셨던 거 기억나세요?”라는 질문에 끝까지 울지 않았다고 우겼다. 탄생의 순간, 그 후 몇 년, 가족은 사진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며 다시 태어났다.

“얼마 전에 다섯 살배기 조카가 ‘고모, 나는 결혼해도 아기 안 낳을 거예요’ 하는 거예요. 제가 ‘왜? 나중에 결혼해서 너같이 예쁜 아이 낳아야지’ 하니까 ‘아프잖아요. 안 낳을 거예요’ 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산에 대해 가진 편견이 정말 크구나.”

드라마를 보면 아이를 한 번도 낳아보지 않은 배우들이 소리를 지르며 출산 장면을 연기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여학생들도 출산에 대한 감동과 감사를 배우기도 전에 두려움과 고통을 먼저 본다. 이건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출산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아이들은 사진을 보고도 거부감이 없었어요. 여학생, 아가씨들은 ‘징그럽다’ ‘무섭다’고 느끼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에게 ‘생명이 이렇게 감동적인 것이다’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한 출산은 두려움의 대상인 듯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대신 앞으로 그의 사진이 말을 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시청 앞이나 지하철역같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사진을 걸고 싶다. 아주 짧은 순간, 한 번의 스침으로도 탄생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산모는 정말 목숨 걸고 아이를 낳아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느껴지는 감동, 너무 아프다가 한순간 고요해지는 느낌, 산모들이 아이를 안고 흐느끼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생명과 나 자신과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남 작가의 다음 목표는 ‘끝’의 순간을 찍는 것이다. 셋째 언니가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돌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36도 5부’로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살다 이제 하나씩 잃으며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고. 그렇듯 시작과 끝은 항상 맞닿아 있다. 때문에 시작을 귀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은 삶도, 끝도 귀하게 볼 줄 안다. 자신이 정말 고귀한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어찌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힘껏 산 뒤 마지막 순간에는 분명 느낄 것이다. 참 잘살았다고. 삶에게 고맙다고.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시간의 숲(02-730-0097) 사진 제공 / 남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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