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대답은 비슷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얻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 행복, 성공, 건강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는 바로 ‘분노 조절’이라는 것을. 치밀어 오르는 화를 현명하게 다스리고 평화롭게 치유할 수 있다면 건강, 행복, 성공이 조화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해 유행되고 있는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분노를 느끼지 못한 너그러움의 달인’ 정도가 아니고서야 ‘화’라는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하지만 이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장기간 억누르다 보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병이다. 주변에서 종종 “울화가 치밀어서 못 살겠다”라며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지로 참아 생기는 신경성적인 화, 바로 이 울화가 화병의 근원이라 하겠다.

하지만 화는 걱정거리이기는 해도 우리에게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갖는 기본적 정서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꼭 필요한 부분. 실제로 한의학에서는 화를 인간의 에너지, 즉 인간의 생명력으로 보기도 한다. 또 화는 존중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돕고 상대와 경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결국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화를 줄이고, 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화병이란 무엇인가?
흔히 ‘화병’ 하면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함께 떠올린다. 물론 기본적으로 화병은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화병 환자 중에는 체념을 동반한 우울한 기분과 의욕 상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병은 일반적인 스트레스성 질환, 혹은 우울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화병의 경우 뚜렷한 증상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체의 평형상태가 깨지면서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답답함, 치밀어 오름, 몸이나 얼굴에 열이 나는 느낌 등을 자주 느끼게 된다. 또 순환 기관, 소화 기관 등과 연관된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말하는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정신의학회에는 화병이 한국인에게 만연된 문화 관련 증후군이라고 보고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은 주로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일어나는 반면, 화병은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또 화병 환자들은 본인이 어떤 이유로 화가 생겼는지,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아온 경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어떤 부분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싸우지만, 조용히 가정을 지키기 위해 꾹꾹 눌러 참아온 가정주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일상적인 분노는 그 감정의 소고점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없어진다. 하지만 분노를 장기간 억압해온 화병 환자들은 화를 받아들이는 역치가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별일 아닌데도 쉽게 화를 낼 수 있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일에도 화를 내는 경우가 생긴다. 이 또한 화병의 고유한 특성에 해당한다.

화병의 원인
울화와 같은 한(恨)이 화병의 큰 원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화병은 40대 이상 주부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유교적 여성관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오랫동안 참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화병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이들 중에는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과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 받는 남성 환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또 화병을 호소하는 이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다.

화병의 원인은 크게 개인적·가정적·사회경제적 문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흔히 가정 내 문제가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결혼에 의해 새로 가족이 된 사람과의 갈등이 문제가 된다. 많은 여성들의 경우 역시 남편과의 문제가 많은 편이고, 시부모와 친척 간의 문제도 크다. 최근 들어서는 자녀 문제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사회의 경쟁이 심화되고 자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이 주부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는 가난과 고생이 가장 많고, 인간관계 스트레스·사업 실패·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화를 키우게 된다.

개인에 따른 차이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화병은 일종의 ‘신경증’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신경증에 잘 걸리는 사람이 화병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크다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양심과 자아가 강하고,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며,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며 강박적인 경우가 많다. 또 책임감이 있고 도덕적이지만 불안정하고 과민한 이들도 화병에 쉽게 노출되는 유형이다. 하지만 성격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고 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므로 화병을 개인의 성격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모든 원인은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원인만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화병의 가장 큰 문제는 ‘그냥 누구나 화나는 일을 겪으며 사는 건데, 치료는 무슨’, ‘화병은 완전히 고칠 수 없는 병일 거야’ 등의 생각 때문에 소홀하게 여긴다는 데 있다. 또 화병은 ‘당신이 예민해서, 성격이 긍정적이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니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화병의 증상
그렇다면 화병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경우 혹은 가슴이나 목에 뭉친 덩어리가 느껴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 몸이나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 급작스러운 화의 폭발이나 분노가 생기게 된다. 또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등이 나타나거나 우울, 불안, 신경질, 짜증이 늘며 잘 놀라는 경우도 있다.

가슴 정중앙 부위를 눌러봤을 때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면 화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가슴 정중앙은 ‘전중’이라는 침의 자리로 감정의 기운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이 부분에 통증을 느낀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해석되며 화병의 증상이 좋아지면 이 부분의 통증도 완화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봤을 때, 특히 화병의 증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기는 심장, 간, 위다. 이들 부위가 좋지 않다면 화를 더욱 잘 다스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화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불의 성질과 유사하다. 끓으면서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열이나 답답한 느낌이 얼굴을 비롯한 눈, 코, 귀 등에서 자주 나타난다. 또 신체의 수분을 소모시켜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입맛이 깔깔해지고, 대변이 굳고, 소변이 붉어지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가슴 부위에서 시작된 통증이 위로 올라가면서 목에서부터 얼굴까지 열이 난다거나 소화 장애, 자주 저리는 느낌이 드는 것 등이 종합적인 화병 증상이다.

치료는 어떻게?
화병 치료의 일차적인 목표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의 치료에 있다. 증상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면 더욱 불안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증상을 조절함으로써 치료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의 문제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화병 클리닉 등을 찾으면 보통은 약물, 침, 치료 명상법 등을 시행하게 된다. 전문 병원을 찾게 되면 약물요법을 사용하는데 기의 순환을 돕거나, 열을 떨어뜨리거나, 화의 반대 기운을 끌어올리거나,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재 등을 각 개인의 주요 증상에 맞춰 처방한다.

특히 효과적인 것이 침 요법이다. 침은 기를 소통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가 뭉쳐 생긴 화병 치료에 아주 잘 맞는다. 여기에 ‘화를 불러온 상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명상법도 함께 병행하게 된다. 증상 치료로 화병 증상이 많이 누그러진다 해도 근본적인 불씨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응어리를 지우고 상대를 용서해야 비로소 화병 치료가 끝이 난다고 본다. 즉, 화병 치료는 혼자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내가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외부적 자극과 내부적 수용의 균형이 분명해진다. 자신이 분노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진다면 신체적으로도 화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자.

물론 화병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욱 필수적이다. 또 화병을 잘 치료했다고 해도 병의 재발을 막으려면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소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도록 하자.

- 화를 무조건 참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 바로 화를 폭발시켜서는 안 된다. 갑작스러운 분노는 더 큰 화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억울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여유 있게 정리한 뒤, 문제가 생긴 상황과 적극적으로 맞닥뜨리자.

- 어쩔 수 없이 화를 표출했다면 그 뒤에는 전신을 이완시킨다. 화가 나면 전신이 경직되기 때문에 신체적 질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명상, 호흡, 근육이완법 등을 실시한다.

- 자신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 또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해 화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한방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종우 교수가 제안하는 일상 속 화 다스리기

◆ 자신을 느끼는 시간, 명상
많은 이들이 살면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챙겨본 기억이 별로 없을 것이다. 주변 환경이나 골치 아픈 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 등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보자.

1) 우선 자신의 숨소리를 듣는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은 편안한 상태에서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게 되면 숨의 속도나 깊이가 변하기 때문에 이를 고르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2) 발바닥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도 좋겠다. 기를 아래로 끌어내리게 되므로, 화가 치밀어 흥분될 때 유용하다. 손바닥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기의 감을 느끼는 데 가장 좋다. 명상을 할 때 손을 마주 보며 정신을 집중시키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3) 자신이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또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을 떠올리는 것도 좋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그때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기운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 두 박자, 네 박자로 걷기
김종우 교수는 “분노는 그 날 푸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화를 받아들이면서 그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자기 전에 화를 떨쳐내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 쉽게 화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걷기다. 명상은 사실 숙달되기 전까지는 혼자서 집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걷기는 생각을 내려놓도록 만들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작정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네 박자를 세며 걷는 것. 적절한 호흡을 곁들여 자신의 몸을 긴장·이완시켜야 한다.

1) 걸으면서 발에 맞춰 마음속으로 박자를 헤아린다.
2) 두 걸음 걸으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네 걸음 걸으면서 천천히 숨을 내쉰다.
3) 들이마시는 숨은 교감신경이 작용하는 긴장의 숨이다. 반대로 내쉴 때는 부교감신경이 작용해 몸이 이완된다.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며 두 걸음, 네 걸음을 반복한다.

◆ 분노를 배출하는 호흡법
당장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화가 몸속에 쌓이지 않도록 숨과 함께 뱉어내자. 분노를 느꼈을 때 바로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호흡법도 있다.

1) 똑바로 서서 양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린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머리 위까지 올린다. 숨을 충분히 들이마신 뒤 입으로 내쉬면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해 아랫배 높이까지 천천히 내린다. 이 동작을 3회 반복한다.

2) 가슴에 쌓인 불기운을 배출해야 한다. 숨을 들이마시며 손바닥을 위로 해 몸의 중앙을 따라 심장 부위까지 올린다. 충분히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입으로 내쉬면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머리 위로 올리면서 “허어” 하고 소리를 내면 심장에 쌓인 화기가 밖으로 배출된다. 이 동작을 5회 반복한다.

3) 이번에는 폐에 쌓인 불기운을 배출한다. 숨을 들이마시며 손바닥을 위로 해 몸의 중앙을 따라 심장 부위까지 올린다. 충분히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입으로 내쉬며 손바닥이 몸 바깥쪽을 향하도록 해 뻗으면서 “쉬이” 하고 소리를 내면 폐장에 쌓인 화기가 밖으로 배출된다. 이 동작을 5회 반복한다.

4) 1)에서 했던 동작을 3회 반복한다.

◆ 음악으로 감정 분출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출구이자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치료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화를 유발하는 주변 환경의 변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관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감정을 분출하고 정화하려면 우선 억울함과 슬픔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하고, 이후 즐겁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기 위한 단조 중심의 슬픈 느낌이 드는 곡을 먼저 듣고, 일상의 생활로 가볍게 복귀하기 위해 약간 밝고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곡을 듣도록 한다.

실제로 화병 치료에 적용하는 음악 청취 프로그램
: 5~10분 내의 6곡으로 구성했다. 매일 한 번씩 2주 정도 듣도록 한다.

슬픈 느낌
1) 글룩(Gluck), 멜로디(Melodie)
2) 비탈리(Vitali), 샤콘느(Chaconne)
3)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재즈 모음곡 왈츠 2번(Jazz suites No.2 Waltz)

밝은 느낌
4) 모차르트(Mozart), 클라리넷 콘체르토(Clarinet concerto)
5) 마스카니(Mascani),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Intermezzo from Opera ‘`Cabellerai Rusticana’)
6) 엘가(Elgar),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이성훈 도움말 / 김종우(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전문의) 그림제공 / 꼬망쎄(http://www.edup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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