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이 벗겨진 법랑 냄비, 바로크 양식의 안락의자, 장식이 화려한 촛대. 유럽의 벼룩시장 풍경이 아니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에 가면 여행 책자에서나 봤음직한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들 사이사이, 발걸음을 이끄는 골동품들을 따라 이국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이태원은 여전히낯선 곳이다. 어깨를 스치는 낯선 체취와 외국어 가득한 입간판은 익숙지 않은 방문객들을 주눅 들게 하지만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조용하고 여유롭게 방문객을 맞이하는 앤티크 거리를 만나게 된다. 해밀턴 호텔 맞은편으로 뻗어 있는 보광동 길 양옆에는 유럽풍 앤티크 가구점들이 즐비하다. 19~20세기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제작된, 혹은 그와 흡사하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그 위에 내려앉은 시간만큼이나 깊은 향기를 낸다. 산책하듯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유럽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거리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변변한 서양식 가구가 없었고 이 때문에 미8군에 근무하는 미군과 그 가족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가구까지 모두 가져와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가져온 가구들을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창고 세일’로 내놓았다. 이런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가게가 하나 둘 생겨난 것이 이태원 앤티크 가구점의 시작이다. 당시 10개가 채 안 되던 고가구점들은 현재 120여 개로 불어났고 파는 물품도 소파와 의자, 장식장, 화장대에서 거대한 대리석 조각과 샹들리에까지 종류가 다양해졌다. 외국인이 대부분이던 고객층도 우리나라 고객으로 넓어졌고 최근에는 신혼부부들과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1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슨 소품들은 조금만 손질해주면 멋진 빈티지 아이템으로 변신한다. 2 가게 앞 테라스에 전시된 탁자와 의자가 고풍스럽다. 3 가구점 테라스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알록달록한 목조 가구들. 4 폭신함이 느껴지는 우아한 안락의자는 혼수를 준비하는 신혼부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5 보광동 길에 있는 앤티크 가구점에는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풍의 우아한 가구들이 주를 이룬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의 매력은 화려하고 중후한 고가구들의 무게만큼 소박하고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점 테라스 너머 곰방대를 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중후한 바로크 양식의 안락의자 위 앉은 고양이가 나른하게 졸고 있다. 조그만 길 따라 고가구의 향기에 취해가다 문득, 이곳이 어디인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곳. 이태원 앤티크 거리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 가는 길
6호선 이태원역 3, 4번 출구로 나와 해밀턴 호텔 맞은편 보광동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그마한 소품 파는 가게들로부터 앤티크 거리가 시작된다. 이태원1동 주민센터를 지나 바이더웨이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 구석구석 구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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