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의 인기 기사 ‘우리 아이 행동 수정 프로젝트 SOS’에서 매달 속 시원한 상담을 해주는 아동전문의 손석한 박사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주제로 책을 펴냈다. ‘걸어 다니는 육아 박사’로 불리는 손석한 선생님이 일러주는 아이와 부모 사이의 작은 간극, 1mm 거리를 좁히는 지혜.

부모를 속상하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 스트레스가 원인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참으로 쉽지 않다. 천사처럼 예쁜 내 아이가 바르고 훌륭하게 커줬으면 하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겠지만 어디 아이가 항상 부모 마음대로 따라와주던가. 아니, 부모가 생각한 대로 아이가 따라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모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각종 육아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손석한 선생님의 육아 기사에는 늘 상담 신청이 쇄도한다.

그중에는 “세상에나, 이런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 하고 놀랄 만한 사연도 가끔 눈에 띄지만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비슷한 몇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타나는 양상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결국에는 일정한 원인과 환경에 의해 일어나는 일인 셈이다.

“제가 「레이디경향」에서 육아 상담을 맡은 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소아정신과 치료를 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구요. 각종 매체에서도 많은 고민을 듣지만 사실 크게 새로운 경우는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이 보편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고 많은 부모들이 그것을 빨리, 정확하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지요.”

손석한 박사는 그런 부모들을 꾸짖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를 마음으로 더 많이 사랑해줘라”라는 섭섭한 말도, “아이에게 맞춰주며 참고 더 노력해라”라는 뻔한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1mm의 차이가 있으니 그 틈새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간격 좁히기를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돕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믿고 있다.

“부모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붙어 있는 듯 보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 간격, 그것이 아이의 미래와 관계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들의 스트레스 요인을 빨리 알아내고 해결하자는 데 초점을 맞춰 글을 썼습니다.”

손석한 박사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성장기 아이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스트레스의 유형과 그 대응 방법을 묶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분석하기에 부모와 아이 사이 미세한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 겪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아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곧 아이의 기질로 이어지게 마련. 게다가 출생 후에도 다양한 자극이 쏟아지면서 아이들이 이를 점점 행동이나 증상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한 부분도 있구요.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부모와 아이 간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가 되겠지요.”

나도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고 고민하는 흠 많은 아빠
많은 이들이 그를 보며 궁금해 한다. 과연 아이에 관한 한 첫째로 꼽힐 전문가인 그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까 하고 말이다.

“제가 부모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해둔 것이 있어요. 첫 번째가 헬리콥터 부모입니다.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경우죠. 두 번째가 엄하면서 항상 자녀에게 명령을 내리고, 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처벌을 내리는 불도저 부모구요. 마지막으로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적절한 조언과 충고를 해줘서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컨설턴트 부모가 있습니다. 저는 늘 컨설턴트형 아빠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죠(웃음).”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도 많다. 특히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한 명뿐인지라 애지중지하는 면이 없지 않다 보니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단다. 그럴 때마다 ‘이게 참 어렵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명색이 아동전문의인데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부끄러울 때도 많다고.

“`그래도 공부해왔던 것, 다른 분들께 상담했던 내용들을 떠올려 실천해보려고 하죠. 그중에서도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폭력이나 화를 내는 대신 따끔하게 짚어주되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타이르려고 애씁니다. 이론적으로 배웠던 부분을 많이 써먹어요. 근데 요즘 아내가 자기만 악역을 맡는 것 같다고 눈치를 주더라구요. 하하.”
전문가인 그도 어려운 것이 아이 키우기이니 이 글을 보고 많은 부모들이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며 웃는다.

일찍 시작한 사회화·부모의 과도한 기대로 더욱 힘든 요즘 아이들
소아정신과 치료를 10년 이상 해오다 보니 이제는 병원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통해 사회상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정신적·심리적 현상은 사회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반영되기 때문이다.

“점점 병원에 오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낮아져요.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 연령에 맞지 않게 일찍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학교에 들어가야 비로소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 되고 단체 생활도 그때쯤부터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린 나이부터 영어며, 수학이며, 예능이며 아이가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 많아졌죠. 자유롭게 친구들을 사귀고 놀기보다 일찍 경쟁하고 사회화되는 훈련을 해야 하구요. 학습적인 부분, 단체 생활시 따르는 인간관계 등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점점 아이에게 일찍 그리고 더욱 과중하게 주어지니까요.”

게다가 아이를 적게 낳다 보니 부모의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또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아이에게 높은 기대로 투영되면서 독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견디는 아이의 감내력 또한 낮아지게 된 것. 결국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키우려면 부모부터, 이 사회부터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런 세상에서 자극을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어린아이들이라면 더욱더 그렇겠죠.”

마지막으로 손석한 박사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한다고 했다. 이제껏 계속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얘기해왔지만 부모 스스로도 거기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는 우를 범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전부 자기 책임이라며 괴로워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특히 엄마들이 그래요. 하지만 그런 자책감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내 아이를 편하게 해줘야겠다는 것만 생각하세요. 그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