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행 잡지마다 다루는 곳이 있습니다. 절벽 위 하얀 교회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 바로 그리스 산토리니죠. 사진만 봐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산토리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허니문 여행지입니다. 사실 국내에 소개된 지도 꽤 오래전이죠. 포카리스웨트 광고의 배경이 됐던 하얀 마을 기억하시죠? 바로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입니다.

이아 마을에서의 허니문
산토리니는 겨울 여행지로는 ‘꽝’입니다. 지중해의 겨울 날씨는 변덕스럽죠. 바람이 불고, 폭풍우도 잦습니다. 산토리니는 겨울에 가봐야 아무런 묘미도 느끼지 못해요. 산토리니 사람들도 겨울엔 상가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버립니다. 결국 가장 좋은 시기는 5월에서 10월까지죠. 이때는 비도 오지 않고 쾌청하죠. 바다는 하늘처럼 맑고, 하늘은 바다처럼 푸릅니다. 지금부터 예약을 준비해야 산토리니에 방을 잡을 수 있습니다. 허니문 시즌을 앞두고 어딜 갈까 고민하는 여행자라면 절대 후회 안 합니다.

산토리니 앞바다를 에게해라고 합니다. 에게해는 문명의 바다죠. 수많은 문명들이 에게해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오니아인, 그리스인, 시실리아인, 미노스인 등이 바닷가와 섬에 도시를 세우고 수천 년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에게해를 다녀온 뒤 「에게해 영원회귀의 바다」란 책까지 썼습니다.

서두가 길었죠. 그럼 에게해의 산토리니로 날아가 봅시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배로 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혼 여행객들은 한나절 이상 걸리는 유람선보다 비행기가 낫겠다 싶군요. 비행시간은 딱 50분입니다.

아테네 공항에서 받은 티켓을 보니 산토리니를 가겠다고 했는데 목적지가 티라(Thira)라고 돼 있습니다. 처음엔 잘못됐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산토리니의 옛 이름이자 정식 명칭이랍니다.

산토리니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피라 마을인데 운치는 이아 마을이 좋습니다. 신혼여행이라면 이아 마을로 갈 것을 강추합니다. 놀기 좋아한다면 피라 마을도 좋죠. 카티키에스 호텔에 묵었습니다. 스몰 럭셔리 클럽의 호텔로 최고급이죠. 호텔 객실 문을 열면 절벽 앞에 수영장이 있고, 그 너머로 에게해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이죠. 호텔은 게스트가 아닌 사람들은 출입 금지입니다. 산토리니의 호텔들은 절벽에 있고, 굴을 뚫어 만들었기 때문에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묘한 아늑함이 있습니다. 어떤 객실은 과거의 마구간을 개조했고, 어떤 객실은 창고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창이 작지만 토굴 같아서 여름에도 시원합니다.

이튿날 아침부터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 마을로 나갔습니다. 마을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아침부터 붐빕니다. 오전 10시엔 지중해 크루즈가 여행객들을 또다시 부려놓습니다. 이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시간은 얼추 점심 무렵이죠.

푸른 바다와 하얀 집에 마음을 맡기고
여행 코스는 어디로 잡느냐구요? 그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게 투어입니다. 아침 해에 비친 마을은 환상적입니다. 세상에…, 흰색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요? 지중해의 햇살이 하얀 집에 부서져 눈이 부십니다. 이아 마을 서너 번째 골목길 귀퉁이에서 자그마한 교회가 보였죠. 산토리니 포스터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로 그 교회와 닮은…. 사실 포스터에 나온 교회가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습니다. 걸어서 20분 거리인 길쭉한 이아 마을에 교회만 79개나 되니까요. 절벽에 집을 짓다 보니 땅이 부족하고, 큰 교회도 세울 수 없었답니다.

대신 작은 교회가 여러 개 생긴 거죠. 심지어는 방 한 칸 크기의 작은 교회까지 있다네요. 산토리니에선 교회와 하얀 집뿐 아니라 대문도 아름답습니다. 바다로 향하는 절벽에 달랑 대문 하나만 달려 있는 집을 보면 가슴이 쿵쾅쿵쾅 뜁니다.
그저 하얀 집들과 푸른 바다가 좋습니다. 산토리니를 색으로 표현하면 블루와 화이트. 바다는 푸르고, 집은 하얗습니다.

바다는 에게 블루(Aegean Blue). 에게해 바다 빛은 다른 바다보다 더 짙푸릅니다. 검정이 배여 무거운 청색이 아니라, 깊고 짙되 반짝거리는 가벼운 청색입니다. 먹물 낀 푸른 바다는 무섭고 섬뜩하지만 에게 블루는 따뜻하고 화사합니다.

작은 카페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느린 템포로 편곡된 ‘Lean on Me’가 흘러나오는 카페에선, 연인들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거리에서도 연인들의 웃음소리는 좁은 골목길을 굴러다닙니다. 길에서 만난 여인은 대뜸 “여자친구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죠.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 커플은 ‘허니무닝’이라고 했고, 지중해 유람선이 부려놓은 관광객들도 죄다 커플이었죠. 산토리니 관광객은 연인이나 부부들이 대부분입니다. 타히티의 보라보라 섬과 비슷하죠. 혼자 가면 외롭습니다.

카페 주인에게 물었죠.
“왜 절벽에다 집을 지었을까요?`” “옛날 해적들이 많이 출몰했어요. 적이 오는지 빨리 알아차리려면 산꼭대기에 집이 있는 게 나았나 봅니다.”

그래서 산토리니 피라 마을은 부두에서 마을까지 5백66계단, 이아 마을은 2백14계단 혹은 2백86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여행자를 위한 노새를 타고 마을에 오르는 투어 코스가 있습니다.

“왜 집들이 하얀색이죠?” “법적으로 하얀색을 칠해야 해요.” “지중해가 덥잖아요.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은 더 힘들 거예요.” “터키가 강제 점령했을 때 저항의 의미로 하얀색 십자가를 그렸거든요….”
마을 주민들의 설명은 제각각이었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산토리니의 석양에 사랑의 맹세
낮 12시쯤이면 관광객들이 일부 빠집니다. 유람선을 타고 온 관광객들이 배로 돌아가거나 피라 마을로 건너가면 이아 마을은 조금 한가해지죠. 이때는 바에서 맥주도 한 잔 하고, 기념품도 사러 다닐 수 있습니다. 잘 만든 마리오네트 인형도 귀엽습니다. 마을 중간쯤에 있는 반지하 서점 ‘아틀란티스’에도 꼭 가보세요. 딱 하나뿐인 서점이니 금방 눈에 띌 겁니다. 토굴 같은 책방에는 산토리니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집이 있죠. 1930년대의 흑백사진을 구경해도 재밌죠. 벽에 선반을 달아 책을 전시해놓았으니 단박에 알아보실 겁니다.

사람들이 뜸해지면 개나 고양이와 놀아도 됩니다. 순하디순한 개들은 관광객을 쫓아다니며 놀아달라고 장난질을 해댑니다. 어떤 놈은 지붕 위에 올라가 낮잠을 잡니다. 산토리니의 오전 여행에 제목을 붙인다면 ‘평화’ 정도로 해놓으면 딱입니다.

오후 5시쯤이면 이아 마을은 다시 북적입니다. 이번엔 피라 마을의 여행자들이 이아 마을로 노을 구경을 옵니다. 사실 노을보다 노을에 비낀 마을이 화려합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지붕 위에, 난간 위에, 절벽 위에, 카페에 앉아서 에게해로 떨어지는 햇덩이에게 말을 겁니다.

“오늘 이 여자와, 이 남자와 평생을 이어가게 해주세요.”
이런 사랑의 주문을 왼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연인과 가벼운 키스…, 로맨틱하지 않을까요.
해가 저물면 전등에 반사된 하얀 집과 교회가 파스텔 그림처럼 은은합니다. 집들이 하얀색이다 보니 연한 불빛에도 마치 파스텔톤으로 빛을 반사합니다. 그래서 더욱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피라 마을도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피라 마을은 번화가라고 보면 됩니다. 골목골목마다 크고 작은 숍들이 가득하죠. 쇼핑하기엔 딱입니다.

피라 마을도 절벽 위에 호텔들이 붙어 있고, 식당은 훨씬 더 많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죠. 피라 마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봤습니다. 에게해를 바라보고 있는 단독주택 모양의 집도 많고 작고 예쁜 호텔들도 꽤 됩니다. 다만 차들이 다닐 수 없는 길이 대부분이죠. 물론 뒷길이 있긴 하지만 제법 돌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피라 마을은 바 순례를 해도 될 듯합니다. 이아 마을보다 더 떠들썩해서 외국에서 온 친구들과 사귀기에도 좋겠죠. 아니면 유람선을 타고 한나절 화산섬을 돌아도 될 듯합니다.

아 참, 고대의 산토리니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바로 잃어버린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깃든 곳이죠. 산토리니는 BC 3500년 화산 폭발로 섬 가운데가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BC 1500년 화산 폭발 때는 파도 높이가 210m. 아프리카 해안까지 파도가 휩쓸었답니다. 말하자면, 거대한 쓰나미가 도시를 없애버린 거죠. 한때는 원형 섬이었는데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잘려나간 절벽 위에 하얀 집들이 서 있죠. 20세기 초에도 대지진이 일어나 3분의 1 정도가 파괴됐답니다.

산토리니는 에게해에 떠 있는 사랑의 유람선입니다. 연인들의 섬이기도 하죠.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이 섬에 찾아온 전 세계 각국의 연인들이 사랑의 맹세를 합니다. 만년을 이어온 저 푸른 바다처럼 변치 말자고, 저 하얀 집들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자고 말입니다.

▶여행 길잡이

예약을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산토리니는 ‘무조건’ 햇살 좋을 때 가야 합니다. 5∼10월까지가 성수기. 직항 편은 없죠. 유럽(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파리, 로마, 이스탄불)을 거치거나 두바이 등을 거쳐서 갑니다. 아테네공항에서 산토리니까지는 비행기로 50분, 쾌속선으로도 최소 4시간 이상 걸립니다. 산토리니 포인트는 크게 두 곳. 포카리스웨트 CF로 유명한 이아 마을이 사진 찍기 좋습니다. 일몰 포인트로도 유명합니다. 도심인 피라 마을은 골목을 누비며 쇼핑하기 좋습니다.

두 마을 중 하나에 숙소를 잡고 하루는 이아 마을, 하루는 피라 마을을 샅샅이 훑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화산섬 한나절 투어는 25유로 정도. 현지 버스비는 3∼5유로. 버스가 많지 않습니다. 스쿠터를 하루 빌리는 데는 15∼25유로. 렌터카는 35유로(비수기)∼55유로. 렌터카는 대부분 수동입니다. 택시는 공항∼피라 마을(6㎞)이 10∼15유로로 비싼 편이죠. 이오스여행사(02-511-1584)가 산토리니 관광청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산토리니에만 연간 1천5백∼2천 명을 보내는 최다 송출 여행사랍니다. 이 밖에 대형 여행사에서도 산토리니 상품을 판매합니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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