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눈을 감고 숨소리에 주의를 기울여봅니다

주부 최 모씨(37)는 최근 다이어트에 성공해 날씬한 몸매를 되찾았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단식도, 운동도 아닌 바로 최면요법. 따뜻한 욕조 안에 들어가 몸을 푼 그녀는 탕에서 나와 2개의 거울 앞에 선다. 왼쪽에는 현재 그녀의 모습, 오른쪽에는 날씬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뒤 집중한 상태에서 암시를 넣는다. 이 모든 것은 다이어트를 위한 최면 치료 중 일부다.

금연·다이어트·스트레스 해소까지 널리 활용되는 최면요법

최근 최면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 질환을 앓는 이들이나 받는 치료로 인식되던 것과 달리 요즘에는 만성 질병을 호소하는 이들은 물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주부·직장인들까지 최면치료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추세다.

최면의학이란 최면 상태를 유도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치료 요법이다. 정신이 한 군데 집중되어 있고, 무의식에 접근되어 있는 상태가 바로 최면이다. 최면요법은 병의 근원이 몸과 마음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보고, 그 경계선을 따라 깊숙한 정신의 내부로 들어가 치료를 시도한다.

한때, 신기한 미신 정도만으로 치부되었던 최면요법은 과학적 학문의 한 분야로 성장해왔다. 1987년 정식으로 국내에 도입된 후, 현재 신경정신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최면학회가 만들어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실 최면이라고 하면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최면치료는 특이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옆에서 말을 걸어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내용에 몰입하는 것과 최면은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무의식의 내면에 집중한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한 뒤 의식의 영역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상상력 풍부하고 몰입 잘하는 ‘최면 감수성’ 높은 사람에게 효과적
최면치료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불안 장애, 대인 공포, 강박 장애, 우울증, 전환 장애 등의 정신적·심리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두통, 과민성 대장 장애와 같은 만성 질환 및 암과 같은 통증을 앓는 이들도 최면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금연이나 다이어트,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최면요법을 활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보통 최면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2달 정도의 치료 기간이 걸린다. 5~10회 정도의 치료로도 확실한 증상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최면요법의 장점이다. 또 근원적인 부분을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발할 염려가 거의 없고 스스로를 편안하게 안정시킨 상태로 들어가면서 힘들지 않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내성으로 인한 습관성이 생길 수 있는 약물과 달리 지속적인 훈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은 최면치료가 갖는 이점이라 하겠다.

변영돈 전문의는 약물이나 기계의 부작용없이 근원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면치료를 추천했다.
물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최면 전문의들은 “최면은 치료의 도구이지, 그 자체가 치료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이 도구를 적절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최면치료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면요법을 실시하는 치료자가 풍부한 경험과 훈련된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의인지를 철저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최면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5명 중 1명은 아예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최면에 잘 걸릴 수 있는 최면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면을 받기 전에 먼저 최면에 잘 걸리는 유형인지를 알아보는 ‘최면 감수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보통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볼 때 내용에 쉽게 몰입하고 잘 동화되는 사람은 최면에 잘 걸릴 확률이 높다. 상상하기를 즐기고 감성이 풍부한 이들 또한 최면 감수성이 높은 편이다.


최면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 최면에 걸리면 의식이 사라진다?
최면 상태는 무의식을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지 의식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에 들더라도 본인의 의식은 작용한다. 최면 상태에서 치료자가 얘기를 하면 환자는 신체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의식이 있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고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이 나타난다는 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속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일 뿐, 혼수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최면 상태에서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
TV 프로그램 등에서 최면에 빠진 이들이 과장된 행동을 하거나 최면 유도자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방송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설정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 기전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의지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 앞서 말했듯 최면 상태에서도 의식이 살아서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털어놓는다거나,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 수면 상태가 바로 최면 상태다?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최면과 수면은 사실 같은 뜻이지만 최면은 결코 잠이 아니다. 최면뇌파는 수면뇌파와 다르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최면에 걸리면 몸의 감각 기관이 이완되고 호흡이 고르게 바뀌는 등 잠을 잘 때와 비슷하게 변하지만, 오히려 최면은 고도로 집중된 상태다.

최면에서 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최면에 깊이 걸리면 잠을 자는 경우도 있지만 못 깨어나는 경우는 없다. 특정 물질을 주입시키거나 자극을 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특별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 현실이 힘들고 괴롭다고 느끼는 이들이 최면에서 깨지 못할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위험한 것은 아닐까?
최면은 단순히 정신을 집중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약물을 넣거나 기계적인 치료를 가하지도 않는다. 해로울 이유가 전혀 없다. 부작용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 최면 상태에서 떠올린 것은 모두 사실이다?
모두가 사실인 것은 아니다. 최면 상태에서는 환상이나 공상도 자유롭게 꿈꾸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영상이 모두 과거의 정확한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최면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찾았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전생의 기억은 최면 투사 현상의 일종으로 무의식적 내용의 표출이다. 흔히 최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전생의 기억을 봤다는 경우가 많다. 기억 자체가 진짜 사실이라면 개인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내용도 동서양, 혹은 문화적 차이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면 전생의 기억 등은 암시의 산물이라 보면 된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취재 도움 / 변영돈(최면의학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