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책을 한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토끼를 쫓다가 구멍에 풍덩 빠져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가 주스를 마시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모험하던 바로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정말 환상의 세계가 있는 것 같은 꿈을 줬다. 이 동화에서 토끼, 쥐 등 동물들에게 달리기 경기를 하자던 이상한 새 도도가 나온다. 이 새의 고향이 바로 모리셔스다.

모리셔스 사탕수수밭

1865년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원래 루이스 캐럴이 자신의 딸에게 들려줬던 동화였다. 작가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앨리스는 둘째 딸 이름이다. 이 책에 나오는 도도새는 지금은 살아남지 않았지만 원래 실존했던 새이다. 그럼 도도가 유럽에 살던 새였나? 아니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서만 살던 새였는데 지금은 멸종됐다. 작가가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에 아마도 옥스퍼드 대학 박물관에는 도도새의 화석이 있었나 보다. 지금도 도도새의 모습을 복원해놓은 그림이 걸려 있는 전시실이 있다.

멸종된 도도의 섬 모리셔스
자, 그럼 `이상한 나라의 ‘고향`’으로 한번 가보자. 대체 모리셔스는 어디쯤 붙어 있는 나라일까? 아마도 이름조차 생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모리셔스를 모르는 사람은 지도에서 모리셔스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일단 아프리카 대륙 남아공을 찾는다. 남아공 옆에 있는 커다란 섬이 보이는데 여기는 마다가스카르다. 그 옆에 콩알처럼 작은 섬들을 잘 살펴보면 모리셔스란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모리셔스 바다 위의 선탠 베드.
아프리카 하면 동물의 왕국을 떠올리거나 전쟁과 내란, 에이즈와 빈곤 등이 머릿속에 겹쳐지겠지만 모리셔스는 세계적인 휴양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조트들이 있고, 바다도 아름답다.

리조트나 바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도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넘어가자. 도도가 왜 사라졌는지 궁금할 것이다.

모리셔스는 1500년대만 해도 무인도였다. 중세에는 아랍 사람들의 지도에 등장하는 정도의 섬이었다고 한다. 이 땅에 처음 발을 딛은 사람은 포르투갈인들로 1507년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섬에 내렸을 때 섬은 평화로웠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달려들 법한 표범도 없었고, 맹수의 왕 사자, 커다란 기린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작고 뚱뚱한 새들이 나와 포르투갈 사람들을 바라봤다. 키는 75㎝, 몸무게 25㎏ 정도의 못난이 새는 겁도 없이 사람들이 나타나도 도망치지 않고 신기한 듯 쳐다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바로 도도. ‘바보’ ‘멍청이’란 뜻이다. 허기진 선원들은 날지도 못하고 포동포동 살이 오른 도도를 잡아 배를 채웠다.

그럼 도도는 왜 사람을 피하지 않았을까? 모리셔스에는 도도의 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도, 고양이도, 늑대도, 독수리도 없었다. 도도는 힘들여 날 필요조차 없었고, 땅에 떨어진 과일과 나무열매를 먹고 살았던 것이다. 도도에게 모리셔스는 에덴동산이었다. 도도가 섬의 주인이었다. 편안하게 떨어진 과일만 먹어도 배가 불렀던 도도는 날개가 펭귄처럼 퇴화했다.

포트루이스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리셔스를 버리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뒤 90년쯤 뒤인 1598년엔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왔다. 네덜란드인들은 자기 나라 왕자 모리스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을 모리셔스라고 불렀다. 모리셔스란 이름은 이때 나온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보기에 섬은 평화로웠다. 그래서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집 닭장에서 씨암탉 꺼내듯 도도를 잡아먹었다. 정착민뿐 아니라 사람들이 들여온 개와 돼지도 닥치는 대로 도도 알을 먹어치웠다. 1681년 결국 모리셔스의 마지막 도도가 사라졌다. ‘도도를 끝장낸’ 네덜란드 사람들은 1710년 훌쩍 모리셔스를 떠났다.

그 다음 섬의 주인은 프랑스. 1715년 프랑스인들은 인도로 가는 뱃길 중간에 기착지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끌고 와 섬을 개발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름을 일드 프랑스, 즉 프랑스 섬으로 바꿨다. 프랑스인들은 아프리카의 전진기지로 모리셔스를 선택했다. 문제는 나폴레옹 전쟁 때 발생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 상선을 수시로 공격하고 애를 먹였다. 화가 난 영국은 함대를 보내 1810년 이 섬을 점령해버렸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인도 사람들을 불러들여 섬을 사탕수수밭으로 개발했다. 그래서 이 섬에는 인도인, 아프리카인, 프랑스인, 영국인, 네덜란드인 등 다인종들이 모여 산다. 1968년엔 모리셔스도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유럽인 통치자들은 모두 떠났지만 이 섬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있던 유럽인들은 섬을 휴양지로 개발했다. 아프리카의 모리셔스가 세계 최고의 휴양지가 된 배경이다.

광활한 사탕수수밭
섬은 특이하게 생겼다. 하와이에서 본 듯한 날카로운 산세를 보면 화산섬임은 짐작할 수 있다. 화산섬 아래 펼쳐진 푸른 들판은 사탕수수밭. 비행기를 타고 모리셔스에 입국하기 전 승객들은 광활한 사탕수수밭을 보고 놀란다. 끝없이 푸른 평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남북이 65㎞, 동서가 45㎞인 제주도만 한 이 섬의 남북을 횡단하는 길은 딱 하나다. 왕복 2차선. 길 양쪽은 모두 사탕수수밭이다. 모리셔스에 사탕수수를 처음 심은 것은 1835년. 영국인들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섬을 지배하면서 인도인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중국인들도 흘러들어왔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 데리고 온 아프리카 노예를 해방했다. 대신 사탕수수를 심게 했다. 그때부터 섬은 사탕수수밭으로 변했다. 1865년까지 30년 동안 들어온 이민자가 20만 명이나 됐다. 20세기 초반에는 인구가 37만 명으로 불었고, 지금은 1백23만 명이다.

사탕수수산업은 이제 한물갔다. 주민들은 쌀도 다 수입한다고 했다. 섬유산업이 한때 부흥했으나 섬유도 성공하려면 이탈리아와 같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거나, 고어텍스 같은 첨단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모리셔스의 섬유산업은 그저 방직업 정도다. 가이드가 인도하는 옷가게에 들렀다. 그는 세계 명품들이 다 있다고 했다. 걸려 있는 제품은 옷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섬유도 조악하다.

사실 모리셔스는 수도 포트루이스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농촌이다. 그것도 2차대전 당시의 화보집에 나오는 것 같은 오래된 농촌의 풍경과 비슷하다. 다만 주민들은 인도계, 중국계, 프랑스와 흑인 혼혈인 크레올 등 다양하다. 공장도 없고, 고속도로도 없다.

어쨌든 사탕수수밭은 장관이다. 사탕수수는 돈 안 되고, 흔하디흔한 작물이었지만 한국인 눈에는 신기하다. 순천만이나 제주 산굼부리에서 봤던 억새나 갈대가 바다 끝자락부터 산봉우리 턱밑까지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도 포트루이스에 가야 그나마 도시 같은 분위기가 난다. 신기한 것은 국제공항과 수도인 포트루이스가 한참 떨어져 있다. 공항은 섬의 동남단, 수도 포트루이스는 북서쪽에 있다. 리조트들은 주로 동쪽 해안에 몰려 있다. 우리로 치면 인천쯤이 수도이고, 포항쯤에 공항이 있는 셈이다.

모리셔스 르프레스킬 리조트.
프랑스인들이 모리셔스에 정착할 때는 인도로 가는 뱃길의 중간기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도시를 건설했을 것이다. 당시엔 뱃길이 더 중요했다. 공항은 아마도 영국군 점령 시절, 군수물자 보급에 편리한 곳이나 군사요충지와 가까운 곳에 만든 것 같다.

포트루이스(Port Louis)도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포트루이스는 아담하다. 영락없이 유럽의 소도시다. 인도계 흑인들, 프랑스인과 흑인 혼혈인 크레올로 넘쳐나는 것이 재밌고, 묘하다. 오렌지주스 대신에 사탕수수를 으깨어 파는 사탕수수주스 노점상도 있다. 설탕물 같지는 않고 달콤한 나무 수액 같은 사탕수수주스는 맛이 독특하다. 이제 1백∼2백 년 정도 되는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은 아프리카 문화, 유럽 문화, 인도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바다&리조트
모리셔스 가이드북에는 바다 빛깔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어느 안내책자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산호지대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환초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현지 가이드도 모른다. 모리셔스 정부 홈페이지에도 산호지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주민들 말로는 섬의 남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다. 영국이 프랑스를 공략할 때 산호지대에 막혀 배를 대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환초로 둘러싸여 있다면 지형은 타히티의 보라보라와 비슷한 셈이다. 산호초가 자라서 둑처럼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바다는 잔잔하다. 대신 다양한 산호의 빛깔이 햇살에 반사돼 바다색이 화려하다. 형형색색의 띠를 이룬 바다 빛깔은 환상적이다.

물빛이 가장 고왔던 곳은 일로셰 섬이다. 일로셰는 사슴섬이라는 뜻. 일로셰 한쪽 바다는 몰디브처럼 투명한 바다를 끼고 있고, 다른 한쪽은 타히티처럼 산호대에 따라 다양한 푸른빛이 띠를 이룬다. 일로셰는 아이들과 함께 놀기 좋은 구역이 있고, 서핑을 즐기기 좋은 파도가 센 지역도 있다. 그래서 섬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많아도 백사장을 빼곡 메울 정도는 아니다. 넓은 해변에 관광객은 2백∼3백 명 정도다. 아일랜드 호핑투어처럼 생각하고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일로셰의 물빛은 흔히 다이버들이 세계 최고로 꼽는 팔라우, 태국의 시밀란 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몰디브와 비교하면? 몰디브는 대개 연푸른색이지만 모리셔스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타히티의 보라보라보다는 못하다.

바다가 아름다우면 고급 리조트가 들어서는 법이다. 게다가 주민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영어와 불어 모두 잘한다. 최근에는 두바이 등 아랍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연간 관광객이 70만 명이나 된다. 리조트는 빌라 형식의 초호화 리조트부터 키치 스타일의 리조트까지 다양하다.

르 투쓰록 리조트는 연인이나 허니무너에게 어울리는 고급 리조트다. 섬에 다리를 놓아 개발했다. 리조트 앞바다에 산호지대가 발달돼 있다. 객실과 욕실이 오픈돼 있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있지만 대부분 객실은 창문을 열면 곧바로 바다가 보이게 돼 있다.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 같은 해변의 모래는 까칠한 편. 연안의 물빛은 연하고 중간쯤엔 옥색을 띤다. 바다 한가운데 큼지막한 선탠 베드와 파라솔이 놓인 부유물을 띄워놓은 것도 특이하다.
식당에서는 허니무너를 위해서 이름이 새겨진 나만의 메뉴판을 준비해줄 정도로 서비스도 일품이다. 저녁을 먹으며 공연을 즐길 수도 있다. 주니어 스위트룸의 경우 베드 바로 뒤편에 대형 욕조를 놓아 창문을 열고 바다를 보며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물빛이 좋은 리조트는 르 프레스킬이다. 녹색에 형광물질이 섞인 것같이 독특하다. 그렇다고 값이 비싼 리조트는 아니다. 키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실속형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라면 고급 리조트보다 르 프레스킬이 낫다. 그렇다고 아주 싸구려는 아니다.

벨마플라주는 호텔형과 방갈로형으로 나뉘어 있다. 호텔형 리조트는 호텔 앞에 수영장을 배치해놓아 고급 수상 호텔(오버워터 방갈로)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주니어 스위트급 방갈로형 숙소는 깔끔한 편. 태국 크라비의 라야바디 스타일과 비교할 만하다. 라야바디가 단독형이라면, 이곳은 10여 개 객실이 들어 있는 복합형이다. 아기자기하다. 벨마플라주의 스테이크 하나는 일품이다.

▶여행 길잡이
모리셔스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간 다음 홍콩에서 갈아타야 한다. 남아프리카항공(http://www.flysaa.com/)이나 모리셔스 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에서 이용하려면 모리셔스 항공보다는 남아공 항공이 낫다. 남아공 항공은 아시아나와 코드쉐어(노선 경유) 협정이 돼 있다. 또 남아공 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돼 있어 마일리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서울∼홍콩∼요하네스버그∼모리셔스. 모리셔스 상품은 인터아프리카(02-775-7756 http://www.interafrica.co.kr/) 등에서 살 수 있다. 시차는 서울보다 5시간 늦다. 현지 택시비는 비싼 편이다. 서울의 모범택시 요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자유여행을 하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낫다. 현지에선 영어와 불어, 크레올어 등이 다 통용된다. 화폐는 모리셔스 루피. 1유로는 40루피, 1달러는 30루피다. 남반구라 기후는 우리와 반대다. 그렇다고 아주 춥지는 않고 초여름 날씨 정도로 보면 된다. 한 달 동안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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