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족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남편들이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해서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을까? 대한민국 30대 남편들이 지난 1년간 아내들에게 드러내고 싶었던 묵은 마음을 털어놓고, 더 나은 가정을 만들기 위한 제안을 건넨다.
▶출장과 외근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아내는 가끔 이런 내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투정을 부릴 때가 있다. 나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럴 때는 아내가 야속해진다. 새해에는 아내가 나만 바라보지 말고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떨까? 그런 과정에서 아내가 활력도 생기고 행복해진다면,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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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처가에만 가려고 하고 본가에 가는 것을 피할 때. 본가가 어렵고, 처가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떨 때는 정말 너무한다 싶을 때가 있다. 그동안 아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너무 의존했다면, 새해에는 취미 생활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이제 막 돌 된 아이는 아내를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아내는 나에게 짜증을 낸다. 아내가 힘든 걸 다 알지만 피곤할 때는 이마저도 받아주기 힘들어 오히려 화를 냈다. 그리고 항상 돌아서면 아내에게 미안했다. 새해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좀 더 분담해 아내가 더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 (최정진·30·결혼 3년 차·아이 1)
▶맞벌이 부부는 가사 분담을 해야 한다. 나는 나름 열심히 가사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가 가사에 소홀할 때는 섭섭하다. 특히 내가 한 요리가 맛이 없다고 투정 부릴 때는 정말 속상하다. 아내가 힘든 건 알겠지만, 새해에는 좀 더 부지런해져서 맛있는 요리를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내집을 마련했다. 야호! 그러나 그 덕분에 대출을 많이 받았고, 매달 꽤 큰 액수의 대출금을 갚고 있다. 같이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지만, 이 때문에 옷도 못 사 입고, 외식도 못하는 아내를 보면 정말 안쓰럽다. 새해에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내를 사랑하겠다. (이준원·32결혼 2년 차)
▶전날 술 마시고 들어와 아침에 쓰린 속으로 일어났는데, 얄밉다고 아침 안 차려 줄 때. 술도 업무의 연장이다. 왜 그걸 몰라주는 거지? 또 오랜만에 시댁 한번 갔는데 빨리 집에 가자고 투정 부릴 때. 시부모가 불편하다는 건 알겠는데, 내내 눈치만 줄 때는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도 처가가 그리 편한 건 아니지만 꾹 참고 있을 때가 많단 말이다.
새해에는 아내가 나와 함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취미 생활을 함께하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보람도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주식은 여유자금으로 투자하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나도 별로 잘한 건 없다. 결혼할 때 프러포즈를 제대로 못한 건 두고두고 미안하다. 또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장기 해외출장 갔던 일. 회사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혼자 지내기 힘들었을 텐데.
2008년 새해, 아내의 바람대로 살을 빼서 좀 더 멋진 남편이 되겠다. 그리고 내 의지로 안 되는 일이지만 야근도 덜하면서 가정과 처가에 좀 더 신경 쓰고 싶다. (김보건·32·결혼 1년 차)
▶아내에게 잘 살아보자는 뜻으로 “생활비를 아껴쓰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내는 이 말을 오해해서 “각자 따로 통장 관리하자”며 노발대발이었다. 결국은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은 네 것”이라고 말해서 겨우 화를 진정시킨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새해부터는 조금 더 여유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고, 말을 할 때는 앞뒤 순서와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아내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 아내 회사에서 주최한 부부 동반 모임에 가자고 했는데 귀찮은 마음에 일이 많다고 거짓말을 했다. 새해에는 아내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처가를 본가처럼 생각하는 남편이 되겠다. (황창영·33·결혼 1년 차)
▶내 아내는 고민거리에 대해 대화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 하더라도 부부가 같이 공유하고 의논하면 더 좋은 결론이 나지 않을까? 또 나는 내 나름대로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데, 잘 안 한다며 짜증을 낼 때는 정말 난감하다.
나도 아내를 서운하게 했던 일이 많았던 점은 인정한다. 아들 돌잔치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회사 일이 바쁘다고 전적으로 아내한테 미룬 것 또한 미안하다. 돌잔치 날조차 돌잔치 끝나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으니 아내는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해에는 아내와 아이에게 언제나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남편, 또 내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의논하는 남편이 되겠다. 물론 이른 귀가는 늘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데, 건강하게 잘 출산하기를 기원한다. (도현호·32·결혼 3년 차·아이 1)
▶지난해 우리 부부는 득녀의 행복을 누렸다.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지극 정성인 아내. 가끔은 그런 아이에게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는 공휴일에 집에 있어도 밥도 안 해주고 옷 한번 다려주지 않더니, 아이에게는 이유식에 쇠고기를 넣어서 주더라. 너무 차별대우 하는 것 아닐까? 새해에는 아내가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맛있는 반찬을 해주기를. 그리고 투덜거리지 않는 착한 아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도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으면 아내가 생각난다. 지난해 회사 직원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새해에는 아내와 유럽이 아니더라도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정철민·32·결혼 5년 차·아이 1)
▶모든 부부들이 본가, 처가를 두고 많이 싸우는 것 같다. 나는 양쪽 다 잘하자는 입장인데, 아내는 아무래도 본가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시댁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은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버틸 때는, 또 그게 빤히 보일 때는 정말 서운하다. 결국 내 설득에 말려 가게 될 거면서. 그래도 아내에게 더 이상 바라는 건 없다. “나에게 당신은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어. 건강하게 옆에만 있어줘!”
지난해 꿈에 그리던 황금돼지띠 아들이 태어났다. 내 생애 그렇게 보람된 적도 없었지만, 바쁜 업무로 인해 병실을 계속 지키지 못하고 출근해야 했다. 아무리 일 때문이라지만, 힘들게 아이를 낳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일찍 퇴근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새해에는 일찍 퇴근해서 집안일도 돕고, 둘째도 만들고 싶다. (허무영·32·결혼 2년 차·아이 1)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가 갑작스레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한 우리 부부. 서로 많은 걸 알고 있어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편하지만, 가끔 아내는 내가 호의를 갖고 해주는 일에 대해 불편해 할 때가 있다. 나는 늘 아내의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인데, 내 전달 방식이 잘못된 걸까? 아내가 너무 씩씩한 것일까? 새해에는 아내가 상황과 환경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아내에게 미안한 점이 많다. 본가 사이의 문제가 그렇다. 시댁 식구들 문제로 마음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 아내도 힘들었겠지만 그런 아내를 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다. 새해에는 아내 말 잘 듣고, 아내의 의견을 1순위로 여기는 남편이 돼야겠다. (최주석·34·결혼 1년 차)
▶속 좁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행복하지만 아내가 아이들한테만 시간 투자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아내와 술 한잔 하면서 허심탄회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곤 한다. 아이들이 주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새해에는 좀 더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었으면 하는 좋겠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워놓은 걸 보면 참 고맙다.
대한민국 남자들, 아내에게 미안한 건 대부분 돈 많이 벌어다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금전적인 여유를 많이 주지 못한 것. 그게 가장 미안하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 새해에는 될 수 있으면 집에 일찍 귀가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 더 이상 아이들 교육을 아내의 책임으로 남겨놓지 않을 거다. (김영상·39·결혼 9년 차·아이 2)
■ 진행 / 두경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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