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12월은 온통 성탄 분위기다. 11월 중순부터 거리는 성탄 장식이 주렁주렁 달리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크리스마스 마켓이란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 선물을 파는 가게들을 뜻한다. 와인을 데워 마시며 몸을 녹이고 약 한 달 동안 성탄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런 크리스마스 마켓은 스위스와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명하다. 상가가 많아서가 아니라 차분한 독일인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성탄도시’의 모습이 정겹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텐부르크 같은 도시는 성탄절 무렵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독일의 고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곳 중 하나가 로텐부르크와 뉘른베르크다. 게다가 두 도시는 작지만(뉘른베르크는 중급 이상 도시지만)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로텐부르크를 먼저 들여다보자.

중세의 보석, 로텐부르크
독일 여행 코스는 길에 따라 나뉜다. 괴테가도, 고성가도 등과 함께 가장 유명한 곳이 로맨틱가도다. 로맨틱가도란 중세 때 만들어진 길이다. `‘로마로 가는 길’이란 뜻으로 당시 가장 중요한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로맨틱한 길이 됐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로텐부르크를 거쳐 퓌센으로 이르는 길에 명소가 많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는 천 년이 넘는 고도고, 퓌센은 디즈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의 무대가 됐던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다. 이 3개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바로 로텐부르크다.

로맨틱가도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중세 때는 무역상들이 이 길을 통해 물자를 실어 날랐고, 바바리안으로 불리는 독일인들은 이 길 주변에 터를 잡고 도시를 세웠다. 로텐부르크는 이 길 중간에 놓인 작은 마을로 기껏해야 인구 2만 명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관광객은 무려 1백만 명이다. 그 이유는 도시가 온전히 중세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로텐부르크는 여러 번 파괴될 위기를 넘긴 운 좋은 도시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부터라고 하지만 9~10세기부터 도시다운 도시가 세워졌다. 15세기 무렵에 인구가 6천 명이었으니 당시에는 제법 큰 고도였다. 뮌헨과 뷔츠부르크 등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제법 부흥했다. 현재 로텐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유럽을 휩쓴 치열한 전쟁을 어떻게 피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이런 일화가 하나 내려온다. 17세기 중반 신교도와 구교도의 싸움인 30년 전쟁이 터지자 로텐부르크도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로텐부르크 사람들은 16세기에 이미 신교도로 개종했다. 구교도의 틸리에 장군이 결국 로텐부르크를 점령했고, 구교도들은 신교도들을 학살하려고 했다. 시의원과 신교도 등을 죽이겠다고 공언해온 장군에게 시장은 연회를 베풀며 명령을 거둬달라고 간청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구교도의 틸리에 장군은 3L가 넘게 들어가는 커다란 잔을 놓고 와인을 가득 따른 뒤 이 잔을 한꺼번에 비우는 사람이 있다면 신교도들을 살려주겠다고 호언했다. 이때 시장이 나서서 한숨에 이 잔을 비워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그후 시장은 3일 동안 잠만 잤다고 한다.

시청사 옆 건물인 시의회 연회장 3층의 인형 장식 시계인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각마다 시계의 양쪽 창문이 열리면서 시장과 장군 인형이 나온다. 인형은 시장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당시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후에도 위기는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40% 정도가 파괴됐다. 하지만 중앙부는 손상이 안 돼 많은 고 건축물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파괴된 부분은 중세의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성벽에 새겨져 있는 이름은 바로 기부자들의 명단이다. 이렇게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로텐부르크를 두고 중세의 보석이라고 한다.

마을은 작다. 하지만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앙증맞고 귀엽다. 지붕은 붉은 오렌지빛이고, 벽은 연한 노란색과 흰 벽으로 이뤄져 있다. 골목길은 좁지만 간판들은 작고 귀엽다. 사슴을 새겨놓은 간판, 맥주잔을 그려놓은 간판 등 간판 하나하나가 이채롭다. 붉은색과 푸른 색 등 원색 일색인 서울의 간판과는 차원이 다르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설 이즈음 꼭 들러야 하는 가게는 게데 볼파르트. 옛날 자동차가 서 있는 집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크고 작은 선물들이 가득한 가게는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물가게로 이만한 곳도 찾기 힘들다.

시가지는 작다. 한 바퀴 도는 데 한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시가지 전체 모습을 보려면 마르리트 광장의 시청사 탑으로 가는 게 좋다. 시청사(Rathaus)는 13세기에 건축된 고딕양식 건물로 내부에는 황제의 방이라 불리는 홀이 있다. 옆에 60m 높이의 탑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 탑이 바로 전망대다. 탑에 오르면 로텐부르크 시가지의 동화 같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붉은 지붕들을 내려다보면 마치 장난감 나라를 보는 것 같다.

이 밖에 시청사 뒤편에 있는 14세기에 세워진 야곱교회(St. Jakobskirche)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 포인트다. 성벽 위를 걷거나, 강가에서 고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중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범죄박물관, 인형박물관, 향토박물관, 도시국가박물관 등도 들러볼 만하다.

독일인의 가슴, 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와 함께 뉘른베르크도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다. 뉘른베르크는 독일 역사에서 독특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를 알면 독일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인구 50만 명 정도의 소도시지만 역사는 깊다. 도시가 건설된 것은 천 년이 다 돼 간다. 5km의 단단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뉘른베르크를 가리켜 독일인들은 ‘제국의 보물 상자’라고 불렀다. 뉘른베르크가 독일왕국의 모태가 된 프랑크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14세기 카를 4세 때.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체코 프라하 출신으로 1355년과 1368년 로마원정을 떠나기도 했던 그는 교황을 압박해 독일의 정치적 독립을 확고히 했다. 그가 뉘른베르크에서 발표했던 것이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금인칙서다. 금인칙서는 독일 왕을 뽑는 선출 절차를 담은 것인데 새 왕의 첫 의회는 반드시 뉘른베르크에서 열도록 했다. 그만큼 뉘른베르크가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독일 국왕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임했으며 최고재판권, 광산채굴권, 화폐주조권, 관세징수권 등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왕의 자리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의 중심이었으니 독일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히틀러는 뮌헨에서 나치스를 출범시켰고, 뉘른베르크를 선동정치의 무대로 삼았다.

세계대전 전후사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히틀러가 군중을 상대로 연설을 하거나 열병식을 거행했던 거대한 스타디움이 나온다. 바로 리펜슈탈이 설계한 제페린펠트 스타디움. 히틀러는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이곳에서 나치 전당대회를 열었다. 제페린펠트는 지금은 F1그랑프리 레이싱카 경기장으로 변했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2차 대전 당시 뉘른베르크는 뮌헨과 함께 연합군의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 전범재판도 베를린이 아닌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다. 괴링, 헤스, 리벤트로프 등에게 사형이 언도된 곳도 뉘른베르크였다.

세계 대전 당시 90%가 파괴됐다지만 관광객들의 눈에는 여전히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고도의 모습이다. 전후 50여 년 동안 옛 모습을 차근차근 복원해왔기 때문이다. 14세기 조성한 하우프트 광장엔 금빛 찬란한 쇤 분수, 시계 공연으로 유명한 맨라인라우펜 성모교회 등이 서 있다.

독일인의 유태인 학살은 히틀러 시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세기 하우프트 광장은 유태인들이 살던 습지. 황제는 이곳에서 유태인들을 모두 쫓아내버리고 광장을 만들었다. 뉘른베르크 성곽의 첨탑에 오르면 성내의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탑과 건축물들이 들어선 고도.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어 더 아름답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뉘른베르크를 두고 독일인들의 가슴이라고 부른다.

성탄절 즈음이면 하우프트 광장 주변에 간단한 간이 시장도 들어선다. 와인을 따뜻하게 데운 글루바인 등을 마시면서 성탄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다.

로텐부르크와 뉘른베르크는 독일 여행길에 한 번쯤 꼭 들러봐야 할 고도다.

▶여행 길잡이
시차는 한국이 6시간 정도 빠르다. 환율은 1유로에 1,300원 정도. 항공편은 루프트한자 독일항공(02-3420-0400)이 인천~프랑크푸르트를 매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30분 걸린다. 홈페이지(http://www.lufthansa-korea.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아무래도 철도가 빠르다. 유럽의 주요 국가 철도상품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회사는 레일유럽(http://www.raileurope-korea.com/). 유레일패스뿐 아니라 독일만 다니는 독일패스, 독일 베네룩스패스, 독일~덴마크패스, 유럽 22개국 중 국경 인접국 3~5개국을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 탑승하는 유럽셀렉트패스, 독일 통과 호텔열차, 독일 야간열차 등 모든 종류의 열차상품을 취급한다. 독일패스의 경우 4일짜리 2등석 기준으로 1백69유로. 1일 추가할 때 20유로 정도 추가된다고 보면 된다. 패스만 있으면 좌석 예약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레일유럽은 일반인들에게 직접 티켓을 판매하지 않고 서울항공(02-735-9076), 리얼타임 트레블 솔루션(02-3704-2800), GTA코리아(02-2170-6505), 하나투어(02-2127-1325), 모두투어(02-7288-280) 등 판매 대리점을 통해 열차표를 판다. 숙박은 B&B스타일의 민박집도 많고 성수기를 제외하면 예약 없이 곧바로 숙박할 수도 있다. 독일관광청 업무는 대사관 상무과에서 대행한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