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이 시장에 선보이자마자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이번 부동산정책 실패는 시장논리와는 무관한 정치논리로 무리하게 사업이 추진된 게 발단이 됐다. 여기에다 사업 추진 주체인 정부와 관련 공기업이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당초 도입 취지와는 무관하게 무성의하게 사업을 추진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값 아파트란 말만 믿고 정부 정책을 지켜봐온 서민들의 좌절감만 키운 꼴이다.

반값 아파트로 주목받은 환매조건부 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이 청약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난 15일 대한주택공사에 따르면 이날 청약저축 24개월 이상 납입 무주택 세대주를 대상으로 1순위 청약을 받은 결과 환매조건부 주택은 0.14대 1, 토지임대부 주택은 0.70대 1의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일반공급분 3백21가구에 45명이, 토지임대부 주택은 일반공급분 2백99가구에 21명이 각각 접수했다.

지난 16일에는 청약저축 6회 이상 가입 무주택 세대주들의 2순위 청약 신청이 이뤄졌다. 노부모 우선공급분 청약에서도 환매조건부 41가구에 1명이, 토지임대부 39가구에 2명이 각각 신청했다. 기타 특별공급에서도 환매조건부 41가구에 8가구, 토지임대부 39가구에 4가구만 신청했다. 노부모 우선공급분과 기타 특별공급분 중 미신청된 물량은 일반공급분으로 넘어간다.

반값 아닌 반값 아파트
1순위 모집에서 참패를 맛본 군포 부곡지구의 환매조건부 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은 16일 이뤄진 2순위 접수에서도 청약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이틀에 걸친 청약 경쟁률이 각각 0.15대 1과 0.09대 1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이 같은 청약자들의 무관심은 당초 기대와 달리 분양가가 반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지임대부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74㎡(29평형)는 1억3천4백79만원, 84㎡(33평형)는 1억5천4백40만원이다. 그러나 토지는 임대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사용료로 월 40만원 안팎을 주공에 납부해야 한다.

환매조건부 주택의 분양가는 전용 면적 74㎡는 2억1814만원, 84㎡는 2억4천9백82만원이다. 군포지역 아파트 값은 1㎡당 평균 2백92만원으로 전용 면적 84㎡ 경우 2억4천5백28만원 선이다. 반값 아파트가 오히려 기존 아파트보다 비싼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예견된 실패
반값 아파트는 도입 당시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기댄 채 토지임대부(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안)와 환매조건부(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 안) 주택이 반값 아파트란 이름으로 급조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정책 안에 국회의법 통과를 거쳐 정부에게 떠넘겨진 꼴이다.

정부는 당초 이들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집값 급등을 잡지 못한 여론의 압력에 밀려 등 떠밀리듯 사업을 시작했다.

애초 사업 추진에 별다른 관심도 없는 상태에서 정치권과 여론이 몰아붙이자 “시범 공급 결과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애초부터 집 없는 서민들에게 값싼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는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잿밥만 챙긴 주공과 토공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시범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에는 등안시했다. 기존 분양주택 공급방식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분양가 인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공택지를 주택업체에게 공급할 때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예를 들어 환매조건부 주택은 20년간 전매가 금지됨에도 택지공급가격은 조성원가의 90%였다. 택지개발업무지침에 따라 전용 면적 60~85㎡ 분양주택은 90~110%에 공급한다. 조성원가의 110%에 공급해야 하는 수도권이지만 지방 공급가격을 적용하는 데 그친 것이다.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에서 업무지침을 개정하면 더 낮출 수 있었다는 얘기다.

또 토지임대부의 경우 일반 소형분양주택의 공급가(조성원가의 110%)를 그대로 적용한 뒤 임대료를 책정하다 보니 실상 주공은 제값을 다 받는 꼴이 됐다. 이는 결국 반값 아파트가 아니라 제값 아파트가 된 꼴이다.
스웨덴의 경우 토지임대부 주택의 땅은 국유지로 판단해 땅값을 받지 않는다. 정부는 그러나 분양가 인하보다는 주공의 수익보장을 앞세운 것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토지사용료를 받지 않으면 분양가를 더 낮출 수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주공의 수익성 악화로 주택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최근까지 주택공사는 대지임대부 방식을 해야만 주택가격을 안정시킨다고 해왔다”면서 “주공 산하 연구소가 1년 동안 검토한 제도를 법제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경기 군포지역에서 시범 실시된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무더기 청약 미달 사태에 대해 조만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검토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할 것”이라며 “반값이 아니더라도 어떤 보완요소가 있는지를 검토해서 제도개선을 통해 의미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는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값 아파트에 대한 종합적 검토 착수 시점은 아파트 3순위 분양 결과가 나오는 대로 건설교통부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천 대변인은 덧붙였다.

그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검토를 할 것이며 올해 말까지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를 놓고 그때 사회적 토론이나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군포 부곡지구 환매조건부 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의 일반공급분 3순위 청약에서 각각 19명과 8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이로써 특별공급분을 포함해 모두 8백4가구 가운데 최종 분양신청된 물량은 1백19가구로 청약률은 15%에 그쳤다.

3자녀 무주택자와 노부모 우선공급 등을 포함해 미분양된 주택은 환매조건부는 전체 4백15가구 중 3백36가구, 토지임대부는 전체 3백89가구 모집에 3백49가구로 총 6백85가구이다.

참담한 분양실적을 기록한 반값 아파트가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정부는 11월 한 달 동안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 올해 말까지 확대 시행 여부를 결론짓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앞장서 반값 아파트 재검토를 거론할 게 아니라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택공급을 다양화하고 싼 분양가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당초 취지까지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기로에 선 반값 아파트
정부가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주택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나선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사업 백지화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존폐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와이플래닝 황용천 사장은 “반값 아파트라는 용어 자체가 경제적인 논리가 아닌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나온 만큼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면서 “국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국민에게 실익이 없는 정책을 끌고 나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약저조=실패’라는 공식은 섣부른 판단이라면서 우선 정책적 보완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고분양가로 인한 집값 급등을 막을 대안으로 반값 아파트가 도입된 만큼 정부가 그에 대한 노력이 충분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는 “다양한 소유형태의 주택공급이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고 수요도 창출할 수 있다”면서 “토지임대부나 환매조건부 주택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박사도 “반값 아파트가 개념적으로 도입해서 안 될 제도는 아니다”면서 “시장상황이 아직까지 토지임대부나 환매조건부를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라고 극단적으로 백지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실수요자의 ‘니즈’를 만족시켜라
반값 아파트 분양 실패는 고분양가가 직접 원인이다. 경실련은 정부가 분양가를 더 낮출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경실련 윤순철 국장은 “SH공사의 아파트 건축비는 3.3㎡당 3백60만원에 불과한데 이번 부곡 시범단지 아파트의 건축비는 4백6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면서 “택지조성을 위한 주공의 사업비도 3.3㎡에 2백7만원에 불과해 최종분양가를 가구당 최소 5천만원 내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즉 주공의 분양가 인하 여지는 아직 충분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주공이 지난달 말 파주 신도시 운정지구에서 공급했던 아파트의 건축비는 3백21만원 선이었다.

토지임대부 주택의 토지사용료도 마찬가지다. 토지사용료는 택지조성원가에다 주공의 자본비용비율(연 4∼5%)에 마케팅 비용과 적정 이윤까지 붙여 계산한다. 주공의 부채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분양가를 잡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월 40만원이란 사용료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다.

가격요인뿐 아니라 전반적인 분양조건도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는 “환매조건부 주택의 경우 시세차익이 거의 나지 않는데도 전매를 20년간 제한한 것은 도리어 수요자의 요구를 거꾸로 받아들인 것”이라면서 “전매제한을 좀 더 자유화하면 현재 시장상황에서 인기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집값 하락기에는 오히려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반값 아파트 논란 일지

-2006.2.1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무주택 서민을 위한 ‘아파트 반값 공급’ 정책 발표.

-2006.11.29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일명 반값 아파트(대지임대부 특별법안) 당론으로 채택.

-2006.12.19 건교부 강팔문 주거복지 본부장, 한나라당 대지임대부 분양제 비판.

-2007.5.17 건교부, 반값 아파트를 도입하는 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 예고.

-2007.9.19 주택공사, 경기 군포 부곡 택지개발지구에 반값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

-2007.10.17 주공 1순위 청약 경쟁 결과 대거 미달로 마감.

글 / 김근철·박재현 기자(경향신문사)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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