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생각한다면 더 멀리 봐야 합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예요”

전 세계 환경위기시계가 9시 31분을 가리켰다. 지난 9월 12일 환경재단과 일본의 아사히 글래스 재단이 발표한 수치다. 오후 9시 31분. 착한 아이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하지만 의미를 모르고 잠들었다가 12시가 넘으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인류 생존 불가능’까지 앞으로 29분
환경위기시계의 ‘12시’는 인류 생존이 불가능한 마지막 시간이다. 지난 9월 현재 9시 31분. 1992년에 첫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위급한 상황이다. 지난 2007년에 비해 인류 생존이 불가능한 마지막 시간까지는 14분이 가까워졌다. 1년 만에 14분이 흘렀고, 남은 시간은 29분이다. 주된 위기 원인은 ‘온난화’로 지목됐다.

환경위기시계는 환경 전문가들이 느끼는 인류 생존의 위기감을 시간으로 표시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세기말 예언’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결과는 전 세계 환경 전문가들의 연구와 설문을 토대로 한다. 일본 아사히글래스 재단(The Asahi Glass Foundation)은 ‘리우 환경회의’가 열린 1992년부터 전 세계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NGO), 학계, 기업 등의 환경 전문가에게 설문을 실시해 발표해왔다. 올해는 96개국 7백15명(한국 32명) 응답자의 답변을 토대로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이대로 가면 생물 종의 30%가 사라진다’ ‘인간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경고하죠. 하지만 지금 사는 데 심각한 불편이 없으니까, ‘환경운동가들이 과장한다’고 얘기해요.”
경험하지 않은 위기를 믿는 사람은 드물다. 환경에 신경 쓰는 것도 잠깐이다. 지구 어딘가에 ‘재앙’이 닥친 이후다. 하지만 온난화의 폐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만 해도 봄,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겨울이 따뜻해진 지 오래다. 대구에서 유명했던 사과는 지금은 태백 영월에서도 유명하다. 요즘은 원주에서 감농사가 잘되지만, 20년 전만 해도 원주는 감이 열리는 도시가 아니었다.

지난 2004과 2005년 여름의 혹독한 더위는 2천1백27명의 초과 사망자를 냈다. 연간 황사 발생일 수는 3배 이승 증가했고 호흡기 환자는 7% 이상 늘었다. 바다는 이미 난류성 어종으로 바뀌고 있다. 제주 남해안 해수면은 연간 평균 0.5cm 상승했고, 이는 2100년에는 제주와 남해안 상당 부분이 바다에 잠길 수도 있는 진행 속도다.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와 환경의 재앙은 이미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환경은 솔직합니다. 빙하지대를 가보면 알 수 있어요. 북극 온도가 22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빙하가 녹아서 좔좔 흐르고 있어요.”

22도의 북극은, 한국의 가을보다 따뜻하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2007년 지구가 처한 현실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탁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서서히 가열하면 뛰쳐나오지 않아요. 개구리는 언제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죽게 되죠.”

인간은 개구리보다 영리하지만, 온난화에 대해서만큼은 딱 개구리만큼 대처하고 있다. ‘온난화는 위험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각종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는 데 기울이는 실질적인 노력은 전무하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호소
환경재단은 지난 8월 4일부터 14일까지,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구온난화 탐사대’를 구성해 캐나다 뱀필드와 로키 산맥 일대를 여행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시간이었다. 탐사대는 논술 대회와 롯데백화점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지원, 오프라인 심사를 통해 이뤄졌다. 선발된 스무 명의 학생은 온난화의 진행 실태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설상차를 타고 올라간 아싸바스카 빙하. 빙하는 무척 추울 줄 알고 옷을 단단히 껴입었습니다. 얼음판이 굉장히 단단할 것이라는 예상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방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실제로 가보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고 빙하가 녹아 물까지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빙하가 녹았다’ ‘빙하가 50년 안에 모두 녹아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 와서 보니, 얼마만큼 빙하가 녹았는지, 빙하가 녹아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서울 인헌초등학교 6학년 윤휘)
6학년 학생의 인식은 어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빙하가 녹고 있다’는 경고는 ‘딴 나라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난화와 북극곰을 연관시킨다. CF에도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측은함에 그친다. 윤휘 학생의 글은 이어진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모습을 본 어린이는 스스로 빙하가 됐다. 녹아 흐르는 빙하가 꾸는 꿈은 슬프다.

“이미 녹고 녹아버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빙하. 이제 옛날처럼 하얗게 눈이 덮인 자신의 모습은 꿈일 뿐입니다. 옛 추억으로나마 어렴풋이 남아 있는 눈들을 생각하며 빙하는 오늘도 회상에 잠겨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로키 산맥의 절경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절경보다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와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 단단한 얼음판이 아닌 푸석푸석한 눈들이 더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마치 그 작은 얼음조각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를 옛날로 되돌려달라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저는 1백 년 뒤 이 곳의 모습을 메마른 빙하의 계곡이 푸르른 풀들로 뒤덮이고, 빙하가 옛날의 하얀 눈옷을 입고 쌍무지개와 더불어 춤을 추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것은 빙하의 꿈이지요. 그리고 대자연의 꿈이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의 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번 빙하가 기뻐하며 춤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1백 년 뒤 빙하의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의 이름은 ‘빙하의 꿈’입니다.”

‘어린이의 감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진지함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현장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물 알갱이, 얼음조각들이 도와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에게 물 알갱이, 얼음조각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말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빙하를 도와주겠다고, 우리 약속합시다. 더 이상 지난날의 추억만을 낙으로 삼는 빙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빙하가 녹아 지구 어딘가가 잠길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듣는 성인들은, ‘아직 멀었네’라고 말하며 위험한 여유를 부리곤 한다. 생전에 일어날 일이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다.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의 심각성은 모른다는 무지함이다. 하지만 이제 10여 년을 산 어린이들에게는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녹아내리는 빙하가 꾸는 꿈에 낭만은 없다. 측은한 마음에 젖을 일도 아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라는 증거다.

“환경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면 잔혹하고 비극적이죠. 끔찍한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것을 누구나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은 나무가 커가는 것과 같아요. 나무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죠.”(최열 대표)

우리는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개발과 성장에 치중했고 그 열매는 달았다. 그 과정에 자연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무심함의 결과가 다시 인간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최근이다.

“세계의 흐름과 자기 삶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생물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죠. 정부는 5년 안에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일을 주로 합니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더 멀리 봐야죠. 지금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최열 아저씨의 제안’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관계없다.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이 이 도시와 지구를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최열 아저씨가 어린이들에게 제안하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일주일

사람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 그 때문에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어떤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도 이제는 충분히 알았을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이상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까지도 당연히 알겠지. 그런데 여기서 끝이야.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할 줄은 잘 몰라. 너희들은 그렇지 않겠지. 지구 온난화의 피해는 바로 너희들의 몫이기도 해.

자 그럼, 최열 아저씨와 함께 앞으로, 아니 지금 당장 ‘기후 행동’을 시작하도록 하자꾸나. 나는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 31가지를 마련했어. 한 달이 최대 31일까지 있으니까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은 꼭 실천하도록 해. 우선 한 달 동안 ‘기후 행동 달력’에 표시된 지침을 실천해보는 거야. 그러면 그 다음달부터는 지구를 사랑하는 습관이 저절로 붙으리라고 봐.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 동안에도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어. 자, 머뭇거리지 말고, 미루지도 말고 당장 시작하는 거야.
(총 31가지 중 7가지만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제 1일 | 지나친 냉난방 습관을 고치자
바깥과 온도 차이가 크면 건강에도 좋지 않아. 가정에서 냉방 온도를 1도 높게, 난방 온도를 1도 낮게 설정하면 연간 약 31k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단다.

제 2일 | 대기전력을 줄이자
가전제품은 스위치가 꺼져도 일정하게 전기를 소모한단다. 이것을 대기전력(가전제품의 콘센트에서 소모되는 전력)이라고 하는데, ‘전기 흡혈귀’라고도 하지. 대기전력을 소모하지 않으려면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은 플러그를 뽑아두어야 해. 그게 불편하다면 멀티 탭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야.

제 3일 |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지하철을 이용하면 중대형 승용차보다 이산화탄소를 100분의 1, 소형 승용차보다는 50분의 1로 줄일 수 있단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어. 직장까지 거리가 4km인 경우 이렇게 해서 연간 185k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해.

제 4일 | 샤워 시간을 1분 줄이자
수돗물도 쓰는 만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돼. 정수 처리, 하수 처리는 물론 가정에 도달할 때까지 송수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전기를 쓰기 때문이야. 샤워 시간을 하루에 1분씩만 줄인다면 한 해에 65k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어.

제 10일 | 옷은 널어서 말리자
세탁기는 옷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돌리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야. 또 되도록이면 세탁기에서 건조시키지 말고 널어서 말리는 게 옷도 덜 상하고 좋아.

제 14일 |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
우리가 많이 쓰는 비닐봉지는 석유에서 뽑아서 만든 것이고, 만드는 데 에너지도 많이 들며,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할 뿐 아니라 땅속에 묻혀서도 백 년 동안 썩지 않는단다. 물건을 사러갈 때 장바구니를 갖고 간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제 20일 | 청구서는 이메일로 받자
컴퓨터 시대가 되면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종이 사용은 더 늘었다고 하더구나. 종이는 나무로 만들지.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뿜어낸단다. 종이 사용을 줄여서 나무를 보호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카드 요금과 각종 청구서를 이메일로 받는 거야. 그렇게 하면 요금도 할인해준단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주석 사진 제공 / 환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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