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부호 7인이 밝히는 아주 특별한 부자 공식

빌 게이츠, 록펠러, 워렌 버핏, 이건희…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인 부자들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켰을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부자들의 자녀교육」(이콘)에서 그들의 자녀 교육법을 엿볼 수 있다. 세계적인 대부호 7인이 밝히는 부자 공식이 흥미롭다.

평범한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재산을 모은 부자들의 이야기라서 우리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은 일반인들의 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반인들과 달리 그들은 고민에서 끝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어떻게 배우고 가르쳤는지 살핌으로써 자녀들의 경제 교육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자 공식 01 빌 게이츠
독서광으로 만들어라

현재 세계 최대의 갑부인 빌 게이츠를 만든 건 바로 그의 부모다. 빌 게이츠의 부모는 빌 게이츠가 어릴 적부터 정보의 보고인 책을 가깝게 여기고 독서광이 되도록 이끌었다. 빌 게이츠는 “부모님은 항상 내가 많이 읽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격려했다. 우리는 책에 관한 것부터 정치까지 모든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의 부모는 자녀들이 책 읽는 데 집중하도록 주중에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금지하고 주말에만 보도록 했다. 빌 게이츠는 지금도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빌 게이츠는 일곱 살 때 부모가 사준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다. A부터 시작해서 P까지 읽은 그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읽는 것. 빌 게이츠는 공상과학 소설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른이 돼서도 정기적으로 책 읽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주중에는 하루에 적어도 1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할애해놓고, 주말이면 책 읽는 시간을 늘린다. ‘생각 주간(Think Week)’에는 후드 커낼이라는 산장에 들어가 회사 일에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을 읽는다. 후드 커낼은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자녀들을 데리고 가 휴가를 즐기던 곳이다. 워싱턴 호숫가에 있는 빌 게이츠의 저택에는 그의 개인 도서관이 있다. 이곳에 그는 1만4천여 권 이상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다. 빌 게이츠에게 독서는 정보 수집의 보물 창고인 셈이다.

빌 게이츠의 독서 습관은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컴퓨터 황제’로 불리는 그이지만 자녀에겐 책 읽는 습관을 강조한다. 빌 게이츠는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가 큰딸의 컴퓨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어쩌면 자신에게 평일에 텔레비전 시청을 금지하면서까지 독서 습관을 들여준 부모의 교훈을 따르기 위해서인 것 같다.

부자 공식 02 록펠러 2세
용돈 교육을 철저히 시켜라

록펠러 2세의 자녀들이 10대였던 1920년대에 매주 토요일이면 그가 살고 있는 뉴욕 54번가 10번지의 9층짜리 저택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그의 여섯 자녀는 용돈 기입장을 들고 한자리에 모여야 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록펠러 2세의 용돈 기입장 검사가 시작됐다.

“윈(넷째 아들인 윈스럽의 애칭), 이번 주도 저축할 돈이 거의 남지 않았구나. 존(첫째 아들인 록펠러 3세의 애칭)의 장부를 봐라. 허튼 데 돈을 쓰지 않고 아껴서 남은 돈으로 교회에 기부까지 하지 않았니?”

록펠러 2세의 용돈 관리는 체계적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주면서 사용처를 정확하게 장부에 적도록 했다. 용돈 사용의 가이드라인도 있었다. 용돈의 1/3은 아이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1/3은 저축을 해야 했고 나머지 1/3은 기부에 사용해야 했다. 아버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따라서 제대로 용돈을 사용한 아이에게는 5센트를 상으로 주고, 저축이나 기부를 하지 않고 돈을 낭비한 아이에게는 5센트의 벌금을 매겼다. 이것은 돈을 단순하게 자신의 소비에만 쓰지 않고 미래를 위한 저축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부에 쓸 수 있도록 교육하는 효과가 있다.

록펠러 2세의 용돈 교육 방법은 20세기 초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그는 용돈 기입장 검사를 할 때면 가끔씩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작성했던 가계부 원장인 ‘장부 A’를 펼쳐서 보여줬다. 열여덟 살 때 첫 직장에 출근한 뒤부터 가계부를 작성했던 록펠러 2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재산이라는 것은 성실하게 관리하라고 신(伸)이 잠시 맡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낭비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씀씀이를 적다 보면 낭비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가계부를 써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록펠러 2세는 자녀들에게 엄격한 용돈 교육을 한 이유에 대해 “나는 항상 돈 때문에 우리 아이들 인생이 망가질까봐 걱정했다.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알기를 원했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부자 공식 03 폴 게티
일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하라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 ‘석유왕’ 폴 게티의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유전 개발 사업자였지만 아들에게 노동 윤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애썼다. 10대 때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직접 유정을 뚫는 작업을 보조하도록 했다. 폴 게티는 다른 노동자들과 같이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3달러를 받았다. 사장 아들이라고 농땡이 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폴 게티는 매일 육체노동에 지쳐 숙소에 돌아와서 쓰러져 자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힘든 일을 시킨 아버지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폴 게티의 아버지는 아들이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니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하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동시에 미래의 유전 개발자로 클 수 있도록 노하우를 현장에서 직접 익히게 한 것이다. 폴 게티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제대로 흡수했다. 그는 ‘아침형 인간’으로 하루를 일찍 시작해서 하루 16~18시간씩 일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라”고 조언했다.

노동의 중요성은 폴 게티가 아들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해주려고 했던 메시지다. 그는 아들들이 장성한 후에 자신의 회사 주유소에서 일하게 하는 등 육체노동부터 시킨 후에 사무실 일을 보도록 했다. 하지만 폴 게티의 교육은 성공하지 못했다. 폴 게티는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후에는 아이들을 모두 전 부인이 맡아서 키웠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노동의 중요성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부자 공식 04 워렌 버핏
독립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라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의 던디란 동네에는 현재 세계 2위 부자인 워렌 버핏의 할아버지가 경영하던 식료품점이 있다. 단층짜리 건물인 그곳은 현재 은행으로 바뀌었다. 은행 로비에는 워렌 버핏의 할아버지가 쓰던 금고가 그대로 놓여 있다. 금고의 설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워렌 버핏은 여섯 살에 이곳에서 여섯 병들이 콜라를 25센트에 사다가 한 병에 5센트를 주고 팔았다. 그리고는 상자당 5센트의 이윤을 남겼다.’

워렌 버핏의 용돈 벌이는 콜라 장사에서 그치지 않았다. 중고 골프공 판매와 신문 배달 등도 그의 주요한 ‘사업’이었다. 10대 중반에는 당시 사회 초년병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가졌을 때 받는 월급 정도를 한 달에 벌었다. 부모의 도움 없이도 생활을 유지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워렌 버핏이 어릴 때부터 용돈 벌이에 나선 것은 재정적으로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의 아버지는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에도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고 전해진다. 워렌 버핏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런 정신을 이어받도록 가르쳤다.

워렌 버핏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독립적인 경제관념을 가르쳤다. 2006년 6월, 워렌 버핏이 재산의 80%를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자녀들은 아버지의 기부 계획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버지가 전 재산을 남에게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듣게 됐을 때 ‘아버지가 왜 저러시나’ ‘저 돈이 내 돈인데’라는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워렌 버핏의 세 자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각각 자선, 농업과 사진, 음악 분야에서 스스로 영역을 개척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부자 공식 05 리카싱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시켜라

한국은 대중교통이 발달돼 있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가지 못할 곳이 거의 없다. 그러나 땅이 넓고 대중교통이 부족한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 땅덩어리가 넓은 캐나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시아 최대의 갑부 리카싱은 캐나다와 미국으로 유학 보낸 두 아들에게 차를 사주지 않았다. 젊었을 때 고된 생활을 했기에 자신이 부자가 됐다고 믿은 그는 아들들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힘든 생활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을 회사 이사회에 참석하게 한 것도 어렸을 때 어려운 일을 겪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리카싱이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어렸을 때부터 시켰구나’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에게 그 같은 경험은 경영 수업이라기보다는 ‘젊어서 고생’의 일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리카싱의 아들들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이해하지도 못하는 대화를 들어야 하고, 심지어는 격론을 벌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이다.

리카싱이 이렇게 어린 두 아들을 독하게 키운 이유는 무엇일까? 두 아들에게 아버지가 공부와 장사 사이에서 방황하며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중국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지내던 리카싱의 아버지는 홍콩으로 이주한 뒤 장사꾼이 되고자 했다. 고향 사람이 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그의 아버지는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리카싱은 아버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장사꾼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공부와 장사,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 지혜를 아들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2007년 현재 40대 초반인 리카싱의 두 아들은 사업가로서는 젊은 나이인 20대 후반부터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 비즈니스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 공식 06 샘 월턴
절약의 가치를 물려주라

세계 최대의 유통 기업 월마트의 회장인 롭 월턴의 사무실은 가로·세로 3m의 정사각형 모양의 방이다. 평수로 따지면 2.8평 정도 된다. 큰 책상 하나 들어가면 사무실이 꽉 찰 정도의 크기다. 면적이 작은 것뿐만 아니라 출입문 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어 창문도 없다. 롭 월턴이 회사에서 가장 작은 사무실을 고집하는 것은 월마트의 창업자인 아버지 샘 월턴이 강조한 절약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샘 월턴의 절약 정신은 미국인들에게 아주 유명하다. 1985년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리스트에 최초로 샘 월턴이 1위에 올랐을 때 기자들은 ‘도대체 샘 월턴이 누구냐’며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깜짝 놀라고 만다. 샘 월턴은 대저택에 살면서 운전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는 부자가 아니라 손수 픽업트럭을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직접 이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매장을 점검했다. 샘 월턴이 몰던 픽업트럭은 1992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벤턴빌에 있는 월마트 방문센터에 옮겨져 보관돼 있다. 방문센터에 전시된 픽업트럭의 시트는 가죽이 아닌 천이고, 바닥 깔개에는 구멍이 나 있어 그의 검소함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샘 월턴이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 까닭은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들었던 아끼는 습관을 성인이 돼서도 유지했기 때문이다. 샘 월턴의 어린 시절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대공황이 들이닥쳤던 때였다. 샘 월턴은 자서전에서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돈에 대한 태도를 공유했다. 두 분은 아예 돈을 쓰지 않으셨다’고 썼다.

샘 월턴은 자녀에게도 절약의 가치를 물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녀들이 가게에 나와 일하게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용돈을 줬지만 용돈의 액수는 자녀의 친구들이 받는 것보다 적었다. 샘 월턴은 40대에 이미 개인으로서는 미국 최대의 소매 체인을 소유한 사업가였지만 자녀들은 사치를 하지 않으면서 자라도록 한 것이다. 자녀들은 커서도 아버지의 절약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했다. 큰아들 롭 월턴의 2.8평짜리 사무실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부자 공식 07 이건희
퓨전 인재가 되게 하라

한국 최고의 부자는 이건희다. 이건희가 이끄는 삼성전자는 회사 자체가 융합의 회사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외국 전자회사에 장래 업종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삼성전자에 기술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여러 제품을 생산하지 말고 반도체 생산에만 집중하라는 충고를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했다. 그래서 반도체, 컴퓨터, 통신제품, 가전제품 등을 복합 생산한 결과 이들의 융합화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건희의 성공 뒤에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퓨전 인재가 되도록 교육한 아버지 이병철이 있었다. 이병철은 아들 이건희에게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유학을 하도록 했다. 자식을 세상과 학문을 두루 돌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건희는 골프, 승마, 개 기르기, 영화 관람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기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웬만한 엔지니어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이건희의 이런 다양한 경험은 기존 한국의 경영인과는 다른 시각을 갖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공부에만 매달린 전문가와는 달리 여러 분야의 경험을 종합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판단할 수 있는 퓨전 인재로 성장한 것이다.

아버지 이병철과 같은 생각을 했던 이건희 역시 아들을 그렇게 교육시켰다.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와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재용은 학부 과정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 석사 과정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그의 할아버지인 이병철이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 역시 아버지 이건희처럼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이재용의 공식적인 취미는 고지도 수집이며 골프, 승마도 수준급이다.
※ 이 기사는 「부자들의 자녀교육」(이콘)을 발췌·정리했음을 밝힙니다.

정리 / 김민정 기자 일러스트 / 정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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